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이런 사회 현상을 반영하듯 지난 대선에서는 출마한 모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었다. 이 같은 화두에 대해 일찌감치 팔을 걷고 나선 이가 있다. 손봉호(75)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다. 손 대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의 속도라도 늦추기 위해 나눔국민운동본부를 설립한 것은 2011년. 아직 2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나눔국민운동본부는 기부문화의 활성화라는 설립 취지에 걸맞은 크고 작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혹시 남들이 우리 자신을 위한 활동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는 기부를 받지 않고 다른 단체에 기부를 독려하거나 권장하는 활동만 한다"는 이 조직은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주택가 골목 안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다.
"대한민국 나눔대축제와 함께 강연ㆍ행사ㆍ이벤트를 열었어요. 기부문화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해마다 한 번씩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요. 우리 본부가 2011년에 설립됐는데 공교롭게도 그해 우리나라의 기부금 액수가 갑자기 늘었어요. 2010년 세계 82위에서 2011년에 57위로 올랐고 지난해에는 45위를 했어요. 모든 기부단체들이 목표를 상향했음에도 초과 달성했어요. 우리 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조를 한 것 같아 기쁩니다."
손 대표는 나눔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한 후 개선된 지표들의 동인(動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나눔과 공생이라는 패러다임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고무된 표정이었다.
그는 "제일 심각한 문제는 양극화가 분명하고 해결 방법은 정부의 공공복지 정책과 자발적 기부"라며 "물론 정책의 역할이 크고 우리는 기부로 보조역할을 하는 것뿐이지만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금전적 측면뿐만 아니라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취약한 기부문화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우리나라 기부금 순위가 세계 45위에 그친 반면 태국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증세를 통해 빈부 격차를 줄이는 방법에 동의하는 듯했다.
"많이 버는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 빈부 간 임금 격차가 줄면 중소기업이나 3D 직종에도 취업 희망자가 늘 것"이라는 그는 "하지만 세금누진 비율은 서서히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세금누진 비율을 가파르게 높이면 복지병에 걸릴 수도 있다"며"복지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나보다 약한 사람도 도와주기 위해 일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그를 통해 자긍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등록금 문제, 취업난,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청년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와 비교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에요. 그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나빴어요. 지금보다 나은 점이라면 그나마 세상이 허술해서 어디든 뚫고 들어갈 구멍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요즘은 사회가 꽉 짜여 있어 뚫고 들어갈 구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노력하면 어디든 길이 있지 않겠어요? 엊그제 아프리카에 다녀왔는데 한국국제협력단(KOICA) 같은 곳을 통해 우리 젊은이들이 오지에서 봉사하고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바로 보상은 없더라도 긴 안목으로 대처했으면 좋겠어요."
그가 젊었을 때는 얼마나 취직이 어려웠는지 영장이 나왔을 때 군대 간다는 생각으로 기뻐할 정도였다. 그는 몸무게가 47㎏으로 기준미달이었지만 군의관에게 빌어서 체중을 불려 입대했다.
손 대표는 "196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네덜란드에 유학했는데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그 나라 젊은이들이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던 기억이 새롭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 친구들은 뚫고 들어갈 구멍이 없었던 것 같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우리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의 이목을 너무 의식한다는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제가 아프리카에 가서 보니 할 일이 널려 있어요. 몇 년 일하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이들이 잘사는 나라만 가려고 할 게 아니라 못사는 나라로 눈을 돌려야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에요."
한 번의 실패로 사회에서 도태되고 있는 중장년층의 현실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가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가장 흔하고 절박한 문제일 듯싶었다.
"연금제도를 빨리 도입했어야 하는데 이제는 늦었고,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남의 빚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남의 빚을 쓰면 약이 없어요. 사업을 할 때 빚을 내지 말고 작은 규모로 시작해야 합니다. 큰돈으로 일확천금을 꿈꿔서는 절대 안돼요. 사기당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일확천금을 노려 그런 거예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체면 따지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해요. 가만히 앉아 한탄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가난한 와중에도 남을 도와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성공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우수한 자질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일을 맡기고 쓸 만한 사람이 많으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아프리카에 병원을 지어놓았는데 보낼 사람이 없어요. 말라위데병원을 지어놓기는 했는데 보낼 사람이 없어요. 의사가 그 나라에 간다고 해서 굶어 죽겠습니까.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과 신실한 인간성이에요."
신학으로 유명한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공부한 그에게 종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어 '왜 종교가 언제부터인가 대중과 유리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종교가 너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종교로서 성공한 게 아니라 세속적으로 성장했다는 말이에요. 돈과 영향력ㆍ권력을 너무 많이 갖게 됐어요. 신도 수가 늘어나니 돈이 많아지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할 텐데, 자선 활동을 잘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 해요. 종교시설 크게 짓고 좋은 차 타고 다니지 말고, 기독교 장관, 기독교 대통령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돈이 많으면 타락하게 마련이거든요. 사회적 영향력이 너무 커져 버린 것도 문제예요. 그러다 보니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있어요. 그래도 사회복지의 70%는 기독교가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하지만 내 욕심 같아서는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나눔국민운동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전국경제인연합회ㆍ삼성ㆍSKㆍ포스코ㆍLGㆍ현대기아자동차그룹ㆍKT 등이 기여를 하고 있었다.
손 대표가 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가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나눔대축제의 경비를 기업들이 도와주고 있어요. 축제는 복지부에서 시작했는데 민간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리가 하게 됐어요. 말씀하신 기업들은 그때 참여한 기업들이지요."
복지와 상생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 출범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최근 TV에서 한 시민이 새 정부는 나쁜 짓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가슴에 와 닿더군요. 박 대통령이 그럴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패가 심한 것은 맞아요. 탈세ㆍ위장전입ㆍ군면제 등은 심각하고요. 일단 위정자들이 부패하지 않았다는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에요. 강한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는 만큼 약한 사람에게 힘이 되는 정책을 펴야 해요. 경제발전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약한 사람들을 돕고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고속도로에 하이패스 하나 생기면 일자리 3개가 없어져요. 전국적으로 하이패스가 몇 개나 될까요.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없어졌겠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하이패스 없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비친 손 대표의 모습은 TV에 출연해 세상의 부정과 사회의 타락을 꾸짖을 때 보여주던 꼬장꼬장한 모습이 아니었다. 조그마한 체구,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머리에 약간 그을린 듯한 얼굴에는 시종 온화한 웃음이 배어 있었다. 이렇게 선한 어른에게서 식지 않는 열정이 쉼 없이 분출되는 원인이 궁금했다. '손봉호'라는 인물을 만든 자양분이 궁금해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과 인물들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성경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쳤어요. 사회에 눈을 뜨게 한 책은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쓴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였습니다. 인물로는 장기려 박사, 김수환 추기경, 김용기 장로, 안창호 선생 같은 분들을 존경하고요. 내가 장기려박사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어요. 이런 분들은 석유ㆍ다이아몬드 같은 물적자원과는 비교가 안 되는 우리의 자산이에요. 아프리카에 가보니 그런 분들의 소중함이 절절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나는 그런 인물들 기념사업에 간여하고 있어요. 이순신ㆍ세종대왕 동상만 세울 게 아니라 이런 분들 동상도 세웠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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