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합격 사과'가 많이 팔렸다고 한다. 1개에 5,000원이나 나가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꼭지를 자르지 않아 당도와 수분함량이 높은 사과도 있다. 꼭지 있는 사과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생소할 것이다. 그동안 사과는 꼭지 없는 것을 먹어왔고 지금 팔리는 사과도 대부분 꼭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사과 꼭지를 잘라왔을까. 우리나라에서 사과 꼭지를 자르는 것은 골판지 위에 사과를 얹어 팔던 지난 1970년대 유통 관행에서 유래한다. 당시 사과 꼭지가 골판지를 뚫고 위에 있는 사과를 찔러 흠집이 생기는 바람에 값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농가에서는 힘들어도 사과 꼭지를 일일이 따냈다.
우린 없애는데 일본은 솜으로 보호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과 산지에 신형 선별기가 도입되고 중간에 스티로폼도 넣기 때문에 사과 꼭지로 인한 품질저하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사과 꼭지를 굳이 자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사과 꼭지를 없애는 데는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농민 한 명이 사과 1톤을 수확하는 데 평균 11.3시간이 필요하다. 이 중 꼭지를 자르는 데 4.16시간, 즉 전체의 3분의1 이상(약 37%)을 쓰고 작업비용도 연간 19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사과 꼭지는 사과의 맛과 전혀 관계가 없다. 소비자들은 사과를 살 때 주로 크기ㆍ신선도ㆍ모양ㆍ당도를 고려한다. 사과 꼭지가 얼마나 짧은지, 제대로 제거됐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과 꼭지가 있다고 해서 고객들이 마음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과 꼭지는 오히려 사과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알려준다. 꼭지는 푸른색인 게 좋고 가늘고 부러진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사과도 수박ㆍ멜론처럼 꼭지를 통해 신선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박 꼭지가 말라 비틀어졌거나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그 수박을 사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한국농수산대학의 '사과 꼭지의 새로운 효용에 관한 연구결과'는 사과 꼭지의 중요성을 더해준다. 상온에 사과를 1주일 정도 저장해봤더니 꼭지 잘린 사과의 무게 감소율(4.5%)은 꼭지가 있는 사과(2.8%)에 비해 1.7%포인트 높았다. 꼭지의 절단면을 통해 수분이 빠르게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사과 꼭지를 자르지 않는 것이 신선도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였다.
해외에서도 사과는 대부분 꼭지가 있는 상태로 유통된다. 일본ㆍ호주를 비롯해 상당수 나라가 그렇게 한다. 특히 일본은 꼭지를 솜으로 보호하며 꼭지 없는 사과는 불량품으로 취급한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에 수출한 사과에 꼭지가 없어 현지 판매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도 있다.
열매 수분 빨리 감소… 관행 고쳤으면
올 들어 일부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를 중심으로 꼭지 있는 사과 유통 시범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많은 노동력과 비용이 드는 사과 꼭지 따는 일을 계속할 필요 없이 꼭지 있는 사과를 유통하는 게 더 유리할 것이다. 소비자는 신선한 사과를 먹을 수 있고 생산자는 좀더 편하게 사과를 생산할 수 있어서다.
한미 그리고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같은 시장개방으로 우리 농업은 위기에 처해 있다. 농업은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소비자들은 우리 먹을거리를 적극적으로 소비해야 한다는 말이 많다.
꼭지 있는 사과를 먹고 유통하는 일은 개방으로 전세계 농산물과 싸워야 하는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작지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과일 가게에서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여기 꼭지 있는 사과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