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당 입당파에다 원외임에도 불구하고 집권당 대행으로 발탁된 것은 정치경륜과 친화력이 꼽힐만큼 국회의장과 국민당·국민신당 총재, 신한국당 총재를 지내는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또 여당편에서 정치를 했다는 점에서 권력지향적이라는 비판이 있는 반면 꼿꼿하고 바른말 잘하는 원로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다 지난 63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지난 69년 3선 개헌 반대투쟁에 나섰다가 71년부터 8년간 정치활동의 공백기를 맞는 등 시련을 겪은뒤 10대(79년)때 복귀, 11, 12대 의원을 역임했다. 14, 15대때 전국구로 다시 원내에 진출했으며 문민정부 출범 후 재산공개 파문으로 물러난 박준규 의장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을 지냈다.
그후 신한국당 대표를 지낸 그는 지난 97년 이인제 대통령 후보를 밀며 국민신당 창당작업에 참여, 총재를 역임했으며 지난해 8월 국민회의와의 통합으로 당적을 옮긴 뒤 국민회의 상임고문직을 맡아왔다.
특히 권노갑 고문과 김중권 청와대비서실장이 적극적으로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李신임 대행은 3공 당시 정풍운동을 벌이면서 김종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지난 87년 대통령선거와 88년 4.26 총선때 김종필 당시공화당 총재와의 협력을 거부, 한때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해 앞으로 내각제 문제 등을 놓고 공동여당인 자민련과의 공조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부인 한윤복(67)씨와 1남2녀.
대구(67) 연세대 정외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6, 7, 10(이상 공화당), 11, 12(이상 국민당), 12(민자당), 15대(신한국당) 공화당 당무위원 한국국민당 총재 신한국당 대표서리 국민신당 총재 국민회의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