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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색면 추상의 거장 전혁림 탄생 백주년 기념 전시
‘숱한 군중 속에 섞여 있어도/차라리 무한히 외롭듯이/혼자 아무리 고독하여도/쬐금도 슬프지 않듯이/혁림은 그렇게 자기의 예술에/대하여 정면으로 대결하려는/이러한 태도야말로/어느덧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낡고 잊혀지기 쉬운 그러한/작품을 남기지 않을 것이며.......’
1951년 부산 밀다원에서 열린 고(故) 전혁림(1915~2010) 화백의 첫 개인전을 기념하며 청마 유치환(1908~1967)은 이렇게 썼다. 두 사람은 경남 통영여자중학교에서 각각 미술 교사와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중 만났고, 동향 사람이자 미를 추구하는 같은 예술가로서 깊이 교류했다. 화백은 생전 자신의 예술이 유치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도 않았다. 시를 읽은 감흥을 표현한 작품도 많다. 그는 ‘내 그림 속에는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 이영도 시인의 시상(詩想)이 들어 있고 그들 시 속에 내 그림이 살아 있다고, 그리고 윤이상의 음률이 흐르고 있다’고 곧잘 되뇌었다.
경기 용인 이영미술관이 한국 색면 추상의 거목 전혁림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시 ‘백년의 꿈’을 준비하며 그림과 시의 만남을 기획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미술관은 그와 생전에 인연을 맺었던 시인이나 현 시단의 원로시인들의 작품을 모아 전 화백의 그림과 함께 즐겨보는 ‘화시전’을 마련했다. 1945년 결성된 통영문인협회에서 함께 활동한 유치환, 김춘수 등의 작고 시인을 포함해 김종길, 문덕수, 조오현 등 총 30명의 시인이 이번 화시전에 참여했다.
전혁림 화백의 작품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목기·도자 회화와 관련한 전시도 마련됐다. 한국 전통 목기나 지함, 도자기에 전혁림식 추상회화를 수놓은, 화려하면서도 전통적인 작품들이다. 소나무로 만든 정사각형의 목기 1,050점에 일일이 유화물감으로 만다라(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불화 중 하나)를 그려넣어 설치한 대작 ‘새만다라(2005)’를 비롯해 총 17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 화백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화려한 회화 작품들도 대거 만날 수 있다. 특히 화백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답게 1000호 이상 대작도 여럿 공개한다. 이중 눈부신 코발트 블루가 화면을 가득 메우는 가로 6m, 세로 3m의 대작 ‘통영항(2005)’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직접 구입을 시도해 유명세를 탄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노 대통령은 원본 그대로의 작품을 원했지만 청와대 인왕홀에 걸기에 사이즈가 맞지 않아 새 작품을 의뢰했고 당시 92세의 전 화백이 꼬박 3개월을 공들여 완성한 새 작품이 2006년 인왕홀에 걸렸다.
그 밖에도 미술관은 화가의 작품 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화백을 바로 알기 위한 어린이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10월 3일에는 전혁림 화백의 화업을 재조명하는 기념 학술대회도 열 계획이다. 9월 10일부터 12월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