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CDMA 개발/정장호 LG정보통신 사장(결단의 순간)

◎“대미 기술종속 피할 유일한 대안”/「세계 첫 상용화」 과감 도전/“모토롤러도 실패”… 두려움 적지않아/기초기술이전싸고 퀄컴사와 갈등도/「제2반도체 신화」 디딤돌 자부『TDMA(Time Division Multiple Access·시분할다중접속) 기술로는 외국으로 뻗어나갈 기회가 절대 오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종속되고 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통신산업은 한마디로 완전히 끝난다고 봤지요.』 세계최초로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을 상용화시켜 한국의 통신기술을 세계적 지위에 올려놓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정장호 LG정보통신 사장은 TDMA냐 CDMA냐는 치열한 논쟁속에서 CDMA로 결정한 당시의 심경을 이같이 피력했다. 정사장은 정말 CDMA개발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는게 정사장의 술회다. 오히려 당시 국내 대부분의 분위기처럼 두려움도 적지 않았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모토롤러라는 세계 굴지의 통신업체도 1천여명의 연구인력을 투입했지만 성공을 못했었을 때이며 CDMA기술의 종주국인 미국조차 상용화가 안되고 있을 때니 당연한 우려라 할 수 있다. 정사장은 TDX(전전자교환기)도 처음엔 우리기술로 개발하는데 회의적이었지만 결국 성공해 수출까지 한 것을 생각하며 용기를 가졌다. 또 무엇보다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기술을 들여다 뒷북을 치는 것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들여오는 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시 TDX를 개발한 기술력을 갖고 있던 대우와 동양전자통신이 CDMA개발 참여를 포기한 것처럼 동일한 상황에서 정반대의 생각을 한 경우도 있었다. 정사장은 또 『아무런 기술도 없는 우리가 막바로 개발에 착수할 수는 없으니까 외국의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데 TDMA쪽은 기술이전을 거부하고 CDMA는 퀄컴사가 주겠다고 하니 한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점도 있다』고 당시 배경을 설명했다. 정보통신부(당시 체신부)의 강력한 추진을 바탕으로 CDMA기술개발에 나서긴 했으나 걸림돌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공동개발업체로 선정된 금성(LG),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 3개 업체가 모두 「퀄컴에 지불할 로열티가 너무 비싸다」, 「과연 개발할 수 있겠는가」라는 등의 이유로 실제 개발에 착수하지 않고 미적거리고만 있었던 것. 정사장은 이 때 금성의 연구진에 개발 착수를 명령하고 타업체의 개발 추진을 독려했다. 다른 업체가 망설이고 있을 때 과감히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우리회사 내부의 연구원들 조차 좀처럼 연구를 시작하려 하지 않은데다 이미 TDMA기술을 개발한 모 업체는 CDMA가 승산이 없다며 TDMA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기 시작해 상당히 곤혹스러웠다』고 정사장은 당시의 어려움을 회고했다. 개발중에도 업체들간에 개별적으로 퀄컴과 협상을 벌이는 바람에 퀄컴의 콧대만 높여줘 결과적으로 기술이전과정에서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CDMA기술은 한국이 세계에서 최초로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정사장은 요즈음도 모임에 나가면 『제2의 반도체 신화는 CDMA를 통해 이룩될 것 』이라며 CDMA기술 우위성을 역설하고 다닌다. 『하루 빨리 국내에서 CDMA 기술을 안정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동남아나 중국등 신규 진입국가들이 믿고 CDMA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분명 CDMA는 TDMA에 비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습니다. 이점은 미국의 신규 사업자들 중 60% 이상이 CDMA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정사장은 CDMA기술이야 말로 「기술입국」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또 CDMA로의 결정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보람있는 결단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백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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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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