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이 핏빛으로 얼룩졌다. 팔레스타인 무장 테러조직 ‘검은 9월단’이 올림픽 선수촌에 난입,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잡고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석방을 요구한 것. 사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며 이목을 끌었지만,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은 싸늘한 주검이 됐다. 올림픽 역사상 유례없이 폐막식에 오륜기가 조기로 계양됐던 그 때. 테러리스트들에겐 피의 복수만이 전부일까. 그 복수의 끝은 정의의 귀환일까. 영화 ‘뮌헨’이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답한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을 뿐이다”라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에선 감독 그 자신, 유대인으로서의 분노와 복수심은 드러나지 않는다. 9.11 테러를 겪으며 그의 사고도 한 뼘 자랐다. ‘우주전쟁’에서 보여줬던 신나는 폭격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빗겨 나간 자리는 인간적 양심과 분쟁의 허무함으로 꽉 채웠다. 영화는 ‘검은 9월단’의 뮌헨 테러로 시작한다. 테러는 영화 시작 10분만에 끝난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테러에 대한 복수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적 상상력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복을 결심하고 비밀 공작을 계획한다. 최정예 요원 5명을 뽑아 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팔레스타인인 11명을 살해하기로 결정한다. 비밀요원이 그렇듯, 이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들. 영화는, 바로 이들의 공황적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복수를 결심하면서 이스라엘 정보국은 말한다. “잠시 평화를 잊어라. 그들에게 우리가 강하다는 걸 보여줘야 할 때다.” 그러나 비밀요원들은 인간이기에 강해지는 건 한계가 있다. 임무가 길어지면서 비밀 요원들은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 된다. 이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민간인 희생자마저 발생한다. 요원들의 가족들마저 테러의 위협에 처한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복수가 더 큰 복수를 낳고, 폭력의 악순환은 그렇게 반복된다. 영화는 복수가 결국 진정한 평화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길이라는 핵심을 간파한다. 이른바 스필버그가 바라보는 ‘복수’의 근본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면서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은 점점 커져 만 간다. 역시 스필버그가 그 동안 놓지 않는 가족주의다. 한없는 냉혈한으로 보이는 비밀요원 역시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가장이자 애국심과 도덕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일 뿐이다. 스필버그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긴장감은 떨어지지만, 평화에 대한 고민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다. 2시간 43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은 유대인 스필버그가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았다는 걸 보여준다. 72년 뮌헨 올림픽의 공포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 전쟁의 끝은 과연 어디일지 영화는 말한다. 당연하겠지만,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