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업장 안전 강화" 말따로 행동따로

사업주 30~40년 노후시설 방치<br>노조도 재해 쉬쉬… 임협때 활용<br>노사 안전불감증이 사고 부추겨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떠드는데 뭐가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낡은 시설을 제때 손보지 않아서 황산 같은 위험물질이 새면 고무장갑 등으로 막고 그때그때 고치는 일이 허다합니다."(A 석유화학단지에서 일하는 K씨).

최근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잇따르면서 기업들마다 안전강화를 외치지만 현장에서는 위험한 환경 개선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장에서는 30~40년이 넘은 낡은 시설을 방치하고 있고 노동계도 산업재해를 적극 알리기는커녕 이를 은폐했다가 임금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여수고용노동청에 의하면 지난 3월 17명의 사상자를 낸 대림산업 여수공장 폭발사고 이후 여수 지역 석유화학공장을 두 달여간 특별 점검한 결과 240여건의 산업안전법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대형 참사 후에도 사업장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함이 드러난 것이다.

적발 사항 가운데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사항들이 있었다. 여수고용청 관계자는 "한 석유화학업체에서는 위험물질이 든 탱크 밖에 설치하는 보호벽인 방유제에 구멍이 나 화학물질이 다량으로 유출될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었다"고 말했다.

잇따른 대형 안전사고에도 사업장 안전이 개선되지 않는 데는 사업주가 여전히 안전을 뒷전으로 미루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플랜트노조 여수지부 관계자는 "사업장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협력업체에 안전관리를 떠맡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적어도 안전관리자는 원청업체의 정규직 직원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함에도 떠넘기기 식의 행태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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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산업안전국 관계자는 "산업재해가 났는데도 신고를 안 하고 노동자와 자체적으로 합의를 보는 '공상 처리'가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며 "산재 신고할 경우 따르는 여러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이런 꼼수가 안전사고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노동환경연구소가 지난 11일 발표한 주요 산단 사고은폐 현황에 따르면 울산 지역 국가산단의 경우 지난해 울산시는 45건의 화재ㆍ폭발ㆍ누출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고한 데 비해 고용부는 한 건의 사고도 신고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업장들이 사고를 내고 고용부에 신고하지 않고 은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노동자의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할 노조도 안전 홀대에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건설업체 인사담당자는 "노조가 산업재해를 보고도 숨겨뒀다가 나중에 임금협상 때 임금인상을 위한 카드로 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고용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은 "아무리 법과 제도가 개선돼도 사업주와 노동자의 안전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전사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이제는 기업들이 사업에 투자하는 만큼 안전도 투자해야 할 대상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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