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27일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간에 판문점에서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정전협정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책임의 소재를 떠나 남북 모두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 정전협정 63개항 중에서 현재까지 효력이 남아 있는 것은 155마일의 군사분계선(MDL)과 북방한계선(NLL) 뿐이다.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회는 1992년 북한이 두 위원회의 기능을 무력화 시킨 이후 유명무실해졌다.
정전협정 체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정전협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이 지켜져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됐다면 자연스럽게 평화협정 체제로 이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1953년 이후 남한과 북한에서 협정위반이라고 주장한 사건이 126만 건에 이를 정도로 긴장관계는 지속됐다. 비무장지대는 중무장지대로 바뀌었다. 그 가운데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서해교전 등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북측의 명백한 도발로 인해 빚어지기도 했다. 지금 한반도 문제의 핵심인 북핵문제만 보더라도 남북한 간의 평화정착은 아직 멀기만하다.
남한은 처음부터 이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휴전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후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만을 상대하겠다는 북한의 한미 이간전략의 주요한 구실로 두고두고 이용됐다. 북한은 심지어 평화협정도 남한이 아니라 미국과 체결하겠다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남북관계는 크게 호전돼가고 있다. 남북간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민간인의 군사분계선 통과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내년말로 판문점 경비가 미군의 손에서 국군의 손으로 넘어오고, 휴전선에 배치된 미군 2사단 및 용산 미군기지도 후방으로 재배치 된다. 군사분계선을 통틀어 남한과 북한이 마주보게 된다.
이 같은 변화는 일차적으로는 미군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지만 한반도의 긴장이 현저하게 완화됨으로써 가능해졌다. 이 변화가 가져올 결과는 양면적이다. 남북간의 직접대화체제로 평화가 공고해질 수도 있지만 미군이라는 완충역할이 사라짐에 따라 대결이 첨예해질 수도 있다. 특히 남북군사 핫라인이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발적인 충돌이 대규모 충돌로 번질 수도 있다. 우리의 국방비 부담이 늘어나고,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이 없어짐으로써 안보불안감이 조성되는 것도 부담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민족자존의 차원에서 극복돼야 한다. 지난 50년의 대결로 인해 우리민족이 치른 희생만도 너무 컸다. 이제부터는 남북이 공존공영하는 평화의 길로 가야 한다.
<한기석기자 hank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