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쌀 딜레머

정부가 남아도는 쌀의 처리를 위해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오는 10월 이전에 사료용으로 200만석 이상을 방출키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재고 쌀의 사료 활용은 우리 농정사상 처음으로,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쌀 부족으로 곤경을 겪었던 당시의 상황과를 대비한다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고육지책이라지만 우리 정서상 주식인 쌀을 사료로 사용하는 데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이에 따른 재정부담 등과 관련,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재고 쌀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배경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해마다 거듭되는 풍년과 소비감소로 쌀 재고는 올 가을에 1,380만석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적정수준(900만석)을 크게 초과하는 것이다. 400만석의 재고 쌀을 보관하려면 연간 1,800억원(금융비용 포함)이 필요하다. 시중 쌀값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며 그 부담은 농가와 재정으로 돌아간다. 결국 올 안에 400만석 이상을 특별 처분하지 않으면 안되게 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고민이 있다. 당초 정부는 올 안에 30만~50만톤(210만~350만석)을 대북 지원용으로 계상, 재고 쌀 처분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지난 5월초 북측이 경협 추진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연기한 데다 6월말에는 서해 무력도발까지 발생, 쌀 지원이 어렵게 됐다. 해외 무상원조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도적 차원이기 때문에 운송비까지 부담하게 돼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결국 사료용이라는 카드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재고 쌀을 사료용으로 쓰는 데는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어떻게 돌려 놓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쌀 정책의 실패를 솔직히 시인, 지금의 상황을 가감없이 국민들에 알려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재고 쌀을 사료용으로 쓴데 따른 재정부담이다. 재고 쌀의 주종을 이루는 99년산 시중가는 80kg 한가마에 14만4,900원, 배합사료의 원료인 옥수수의 수입가는 가마당 1만2,000원선이다. 재고 쌀이 사료로 쓰일 경우 가마당 12만2,900원의 손해를 재정에서 떠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적자투성인 양특회계에 5,000억원(200만석 기준)의 부담을 더 지우는 꼴이다. 쌀 소비도 한계에 이르렀다. 올해는 그럭저럭 넘긴다 하더라도 내년에는, 또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특히 쌀시장 개방과 관련한 재협상이 2년 후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의 동북 3성은 지금 저가를 무기로 한국의 쌀시장 완전 개방을 노리고 있다. 이제 쌀 정책은 정부는 물론이지만 여야도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로 접근, 대안을 내놓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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