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김진선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국민성원으로 유치한 겨울축제…해피엔딩 드라마 만들 것"



개최비 1조7000억 예상…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 낼것
'뜨거운 감자' 알펜시아, 투자가치 회복에 주안점
릴레함메르대회 롤모델로… 성공개최·흑자대회 자신
남북 공동개최 힘들겠지만 단일팀등 화해모멘텀 구축 가능
강원도 기획관리실장 시절 김진선(65ㆍ사진)의 머릿속에 처음 자리잡은 올림픽이라는 세 글자와의 인연은 17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집행위원장, 유치위 특임대사를 거쳐 마침내 그를 초대 조직위원장에 오르게 했다. 한국의 평창 동계올림픽 도전사는 곧 김 위원장의 인생 도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오는 2018년 개최 도시로 "피영창"을 외칠 때 김 위원장은 그의 말대로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2003년 프라하에서, 2007년 과테말라시티에서 통한의 눈물을 쏟았던 김 위원장은 도지사 임기를 마친 뒤 유치위 특임대사로서 마침내 오랜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는 당시 "이제 자유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19일 조직위 창립 총회에서 2년 임기의 초대 조직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올림픽 개최를 처음 구상했던 17년 전부터 직함만 계속 바뀌어왔을 뿐 올림픽과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조직위원장으로 선출되자마자 20일 서울 역삼동의 예술문화생태세상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 위원장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는 "고생할 일이 많겠지만 달게 받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최지 결정일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에서 올림픽은 내 운명이라는 얘기를 했다. 첫 구상에 유치위 활동, 그리고 조직위원장까지 맡고 보니 더더욱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그는 "2018년에 어떤 자리에 있건 직ㆍ간접적으로 올림픽을 위해 일하고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성공 개최를 꼭 지켜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무모해 보였지만 확신 있었던 세 번째 도전=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 투표에서 평창은 캐나다 밴쿠버에 3표차로 고배를 들었다. 투표 전 홍보전에서 평창을 평양으로 잘못 알아듣는 IOC 위원이 부지기수일 만큼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3표차 석패는 오히려 희망의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승리가 확실시됐던 2007년 과테말라시티에서 평창은 또 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물량 공세에 밀려 소치에 4표차로 패했다. 두 번이나 냉혹한 국제 현실을 확인한 만큼 포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당시 강원도지사이자 유치위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김 위원장은 과테말라에서 귀국한 후 두 달 만에 세 번째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IOC에서 보는 시각과 국내 시각의 차이가 컸다. IOC 위원들은 두 번의 도전을 통해 평창이 훌륭한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나라에도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고 세 번째에 꼭 도전하라고 하더라. 그런 얘기들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외국의 반응뿐 아니라 두 번 다 9부 능선까지 갔다가 좌절한 터라 이뤄놓은 자산이 너무 아까웠다"는 김 위원장은 "회의론도 많았지만 강원도, 나아가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할 만한 당위성이 있다면 세 번이 아니라 네 번, 다섯 번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는 결단으로 세 번째 도전을 선언했다. 이해해준 도민과 국민에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흑자 올림픽, 기준부터 달라져야=김 위원장은 이달 초 조직위원장 내정 때부터 평창 동계올림픽을 흑자 올림픽으로 치르겠다고 공언했다. 1998년 나가노 대회가 약 100억달러, 지난해 밴쿠버 대회가 약 50억달러의 적자를 내는 등 동계올림픽은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 스포츠 이벤트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생각은 다르다. "역대 대회를 돌이켜보면 흑자와 적자의 판단 기준이 통일된 게 없더라. 나가노의 신칸센(고속철)은 국가 교통망 계획에 원래 있던 것을 올림픽 개최에 맞춰 조금 더 빨리 놓은 것이다. 밴쿠버도 휘슬러를 잇는 시투스카이(Sea to Sky) 하이웨이를 올림픽 개최 비용에 포함시켰다"고 밝힌 김 위원장은 "그런 것들을 다 포함하면 무조건 적자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IOC에 제출한 파일에 따르면 예상 개최 비용이 1조7,000억원인데 최소 비용으로 최대 편의를 추구하자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철도나 도로 등 교통망, 그리고 올림픽 후에도 활용 가능한 경기장 등은 적자와 흑자를 구분하는 기준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게 계산한다면 충분히 흑자로 갈 수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수지 타산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알펜시아'다. 분양률이 20%대에 불과하고 떠안은 빚만 1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진 알펜시아리조트는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김 위원장은 알펜시아 문제를 언급하는 데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처음 사업을 추진한 것은 본인이지만 엄연히 강원도가 책임지고 있는 곳인 만큼 전임자가 섣불리 자꾸 언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인 듯했다. 그는 "강원개발공사가 민간 기업 방식으로 지은 것이다. 도민 세금에 의한 재정 투자는 없었다. 도지사 재직 시절 추진한 사업이라 책임 의식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면서도 지금은 알펜시아의 문제점을 이른 시간 내에 해결해 투자가치를 회복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알펜시아 자체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올림픽 핵심 지구인 알펜시아라는 실체가 없었다면 이번에도 유치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현실적으로 분양이 저조해 자금 유동성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위해서라도 알펜시아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필요하면 외국인 투자도 함께 고민하겠다"는 그는 "적극적인 분양 촉진책을 강구하면 해결책이 있다고 본다. 투자자들에게 믿음을 주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면 투자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롤모델은 릴레함메르 대회=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맥이 터지고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 종합 5위(금 6, 은 6, 동메달 2개)에 오르기 전까지 동계올림픽은 국내에 생소한 대회일 수밖에 없었다.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에서 들려온 승전보가 전부였다. 동계 스포츠의 인기가 아무래도 미약한 상황에서 성공 개최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벤치마킹이다. 역대 21차례의 대회 중 성공했던 대회의 사례를 면밀히 살피고 그 바탕에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1994년 열린 릴레함메르(노르웨이) 대회가 롤모델"이라고 했다. "몇 년 전에 돌아보고 왔는데 강원도와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빙상의 경우 강릉에서, 설상의 경우 평창에서 주로 경기를 진행할 계획인데 산이 많은 릴레함메르도 상황이 유사했다"고 밝힌 그는 "밴쿠버나 토리노 같이 큰 도시가 아님에도 대회를 잘 치렀다. 릴레함메르를 생각하고 준비하면 성공 개최에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릴레함메르는 동계올림픽 개최 당시 인구 2만명 남짓의 시골이었지만 올림픽을 통해 약 4,000억원의 흑자를 냈다. 김 위원장은 "올림픽은 나라 곳곳에서 열리는 월드컵과 달리 개최 도시가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실정을 봐서는 강원도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모두가 함께 국가적인 차원에서 합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조직위와 강원도, 대한체육회, 정부 등 각 주체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동계올림픽 특별법도 여야 없이 강력히 지원하겠다는 분위기인 만큼 법 통과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공동 개최 아니라도 남북 화합의 장은 가능=지난 7월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은 평창과 북한의 동계올림픽 공동 개최 가능성을 거론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평화는 올림픽의 중요한 정신 중 하나다.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모멘텀을 구축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공동 개최나 분산 개최는 남북 간의 협의와 IOC의 인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보다 남북 공동 훈련이나 단일팀 구성, 각종 문화 행사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 등은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힌 김 위원장은 "올림픽 기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끝으로 성공 개최를 위한 국민의 참여를 적극 호소했다. "세 번씩이나 도전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강원도민을 포함한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90% 이상의 국내 지지를 얻은 후보지는 강원도뿐입니다. 유치까지 한편의 드라마가 끝났다면 성공 개최라는 또 다른 드라마를 준비해야 하고 해피엔딩을 위해서는 다시 한번 전국민적인 참여와 성원이 필요합니다.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될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해 또 한 번 도약의 전기로 삼아야 합니다."
구상서 유치까지 17년 "평창올림픽은 내 운명"
■金조직위원장은 "다운증후군 맏아들은 하늘이 준 선물"
학창시절 축구·배구선수, 만능스포츠맨으로 통해
사진에도 일가견, 작품집 '소' 발간도
지난 1994년 설악산의 신흥사(新興寺). 강원도 기획관리실장으로 근무하다 보직 대기 중이던 김진선 위원장이 처음 동계올림픽 개최를 구상했던 곳이다. 김 위원장은 "강원도에서 태어나 자라고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공직 생활을 해왔던 터라 강원도에 대한 자의식이 컸고 발전이 미흡한 것에 대한 일종의 한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처음 생각은 아주 소박했어요. 비무장지대(DMZ)의 60%가 강원도에 속해 있을 만큼 강원도는 제약이 많고 개발 우선 순위에서도 늘 뒤처지는 곳이었습니다.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 방식으로는 어렵겠다고 생각한 거죠. 뭔가 뒤집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동계올림픽과 국제관광엑스포였습니다." 강원 국제관광엑스포는 구상 5년 만인 1999년 개최했지만 올림픽 유치까지는 17년이 걸렸다. 김 위원장은 "지금은 산골 도시 평창이 서울 다음으로 세계에 이름난 곳이 되지 않았냐"고 반문하며 "한국 중에서도 분단의 상징인 곳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강원도 발전이라는 유산도 남길 수 있게 됐다"며 흐뭇해 했다. 평생의 한으로 남을 뻔했던 올림픽 개최를 이뤄낸 지금 김 위원장은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그야말로 백면서생이 결혼을 한 것인데 군수에 내무부 과장까지 하고도 내 집이 없어 1년에 한번씩 이사를 했어요. 공적인 일을 하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가정에 소홀하기도 했고요. 도지사에서 물러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나 했는데 바로 이어진 유치전에다 또 이렇게 조직위원장까지 맡았습니다. 아내나 아이들한테 늘 미안할 따름이죠." 김 위원장은 1남2녀를 두고 있는데 그 중 장남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지난해 3선을 연임한 강원도지사를 마치면서 이임사에서 아들을 돌보고 남편을 내조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맏이가 선천성 장애를 갖고 있어요. 괴로움을 극복하는 데 15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하늘에서 준 선물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돌보고 있어요." 김 위원장은 만능 스포츠맨으로 통한다. 초ㆍ중학교 시절 축구ㆍ배구 선수로 활동했고 고등학생 때는 정구 선수로 코트를 누볐다. 성인이 돼서는 테니스를 즐겨 치고 있다.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어 2008년에는 사진집 '소(牛)'를 내기도 했다. "강원시장 재임 시절 윤주영 전 문화공보부 장관을 뵈면서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공보부 장관에서 퇴임하시고 사진작가가 되셨는데 나도 은퇴하면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1993년 내무부 연수 때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운 김 위원장은 작품 전시회도 몇 차례 연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이다. "강원도에서 소를 많이 찍었어요. 이제는 사람으로 눈을 돌려 생활상을 적극적으로 담아보려 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에 그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중을 렌즈에 담으며 남다른 감회에 젖어 있지 않을까. 약력 ▦1946년 강원 동해 ▦1974년 동국대 행정학 학사, 2001년 관동대 행정학 명예박사, 2005년 강원대 정치학 명예박사 ▦1974년 행정고등고시 합격 ▦1983년 영월군수 ▦1985년 내무부 법무담당관, 기획예산 담당관 ▦1991년 강릉시장 ▦1994년 부천시장 ▦1998년 강원도지사(한나라당) ▦2005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 집행위원장 ▦2006년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 ▦2009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 공동위원장 ▦2010년 예술문화생태세상 이사장 ▦2010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특임대사 ▦2011년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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