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은 남아 있지만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최악의 상황은 지난 것 같습니다.”
미 월가 낙관론자의 얘기가 아니다. 신중한 행보로 유명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말이다.
중앙은행 총재의 말 한마디가 가지는 파급력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까닭에 그동안 강연이나 외부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던 이 총재가 2년 만에 외부 강연에 나섰다.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고 시장에 확실한 메시지를 전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글로벌 신용경색, 원자재 값 상승에 따른 국내 물가 상승, 환율과 금리 문제 등 굵직한 현안이 많아 그의 강연에는 시장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이 총재는 25일 오전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외국어대학교 총동문회 주최 기업인 포럼인 ‘제6회 세계외대 미네르바 포럼’에서 ‘세계경제 여건 변화와 한국경제’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우리를 놀라게 할 대형 사건은 터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호에 대해 이제 거센 폭풍우는 물러갔으니 다소나마 한숨을 돌려도 될 것이라고 진단한 것. 이 총재는 다만 “미 금융시장 불안이 금방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며 “얼마 전까지는 올 하반기부터 서브프라임 사태가 괜찮아질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 시기가 더 늦춰질 수 있고 올해까지 베어스턴스 같은 금융기관 부실이 하나씩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가능성에 대해 그는 “국내 주택시장 또는 가계부채를 중심으로 위기가 생길 가능성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며 “저축은행과 연계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약간 불안한 구석이 있기는 하나 미국 같은 서브프라임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와 내년 경제는 그리 썩 좋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경기파동이 지나가면 내년 하반기부터 나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기업들은 불경기에 미리 투자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최근의 환율급등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 보면 달러ㆍ유로, 엔ㆍ달러, 원ㆍ달러 환율 모두 천장이 어디까지인지 한번 테스트해본 것 같다”며 “달러당 910~920원은 우리나라 경제로서는 버거운 수준인 만큼 지난해까지의 원화강세가 자동 조절되는 측면도 있다”고 해석했다. 환율급등은 일시적 현상으로 아직도 원화강세가 원화약세로 추세 전환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히 미국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므로 길게 보면 여전히 달러 약세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특히 성장이냐 물가냐의 정책우선순위 논란과 관련해 “경상수지 적자나 물가 쪽을 보면 금리를 올려 돈을 줄이라는 신호이지만 경기는 지난해 하반기보다 못할 것으로 보여 금리를 동결하거나 내리라는 신호”라며 “여러 가지 신호가 엇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물가관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해 당분간 금리정책과 관련해 물가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