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사법재판소에서 소위 '잊힐 권리'라는 판결이 있었다. 이를테면 홍길동이 12년 전에 세금체납을 이유로 주택이 경매에 부쳐졌던 과거가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다고 요청만 하면 '홍길동'의 인터넷 검색결과에서 이를 제외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홍길동에게 동업 제안을 받은 사람이나 홍길동이 출마한 지역구의 유권자들이 인터넷 검색으로는 경매와 관련된 글을 볼 수 없게 된다.
검색결과 조작은 정보독점 초래
이런 판결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인터넷이 각광받는 것은 이용자가 원하는 정보만 골라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정보가 쏟아지는 TV와는 다르다. 인터넷에서의 소통은 게시자와 열람자의 '합의'로 완성된다. 그런데 이런 합의가 가능하려면 열람자는 어떤 정보가 존재하는지 미리 알아야 한다. 어떤 정보가 있는지 모르고 열람하는 것은 합의에 의한 열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정보가 있는지 미리 보여주는 것이 바로 '검색 서비스'다.
우리는 검색 서비스가 합법성 등 예측 가능한 기준에 따라 정보를 찾아줄 것을 기대한다. 가령 전 남자친구와의 섹스 동영상처럼 명백히 불법적인 정보가 검색에서 제외된다면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합법적인 정보가 검색에서 배제된다면 어떨까.
정보를 미리 보여주는 검색 서비스가 누군가의 잊히고 싶은 욕망으로 조작된다면 앞으로의 인터넷은 합의가 아니라 우연에 의해 소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끔찍한 억압과 불평등이 된다. 홍길동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각종 신문의 모든 기사와 공공기관의 데이터베이스를 수작업으로 뒤져야 하고 운이 좋아야만 홍길동의 과거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결국 엄청난 수작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업과 집단만이 홍길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과 독점이 발생한다. 이것은 바로 인터넷이 싸워왔던 적들이다. 예측 불가능한 검색결과 조작은 인터넷 이전 시대로 복귀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을 통한 자유롭고 평등한 소통도 좋지만 사람에 대한 평가만큼은 너무 경솔하게 하지 말라"는 취지로 판결을 해석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불가능하다. 경솔한 판단을 막는 것은 더 많고 정확한 정보이지 재단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에 대한 평가와 사물에 대한 평가는 구분이 불가능하다. A라는 문제 많은 건물을 지은 사람이 홍길동이라는 사실은 홍길동이 시작하려는 B건축사업의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이전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
홍길동이 A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검색에서 배제한다면 B건축사업에 투자하려는 사람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이처럼 인간세계 모든 사물의 정보는 어떻게든 특정인에 대한 정보와 연결된다. 건물 A는 항상 홍길동이 지은 건물이고 사람에 대한 평가를 포기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평가를 포기하는 것과 같게 된다.
구글은 지난 5월 말부터 검색결과 배제신청을 받았다. 9만1,000여명이 신청했는데 대다수가 전문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이라고 한다. 전문 서비스업은 소비자들의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검색결과가 조작되면 누구에게 좋을까. 소비자들은 이제 검색결과를 믿을 수 없으니 단지 더 큰 병원, 더 큰 서비스 업체를 찾아갈 것이다. 인터넷이 없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