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4일] <1224> 1907년 공황


“당장 주식시장을 닫아야 합니다.” 1907년 10월24일 오후 은행가 J P 모건의 사무실. 다급하게 방문한 뉴욕증권거래소 이사장이 “2,500만달러가 즉각 지원되지 않으면 50개 증권사와 신탁회사가 망한다”며 울먹였다. 쏟아져오는 환매수요(펀드 런)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은행의 대출 과다와 영국ㆍ이탈리아 등 해외시장 불안으로 약세를 이어온 뉴욕증시가 급격히 무너진 이유는 두 가지. 구리 투기의 후유증과 요즘의 투자은행 격인 신탁회사들의 방만한 투자 탓이다. 신탁회사들이 연이어 도산하자 투매현상이 발생하고 주가는 전년의 고점에 비해 반토막났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모건은 “단 1초라도 휴장은 안 된다”며 은행장들을 불러모아 긴급자금 2,500만달러를 시장에 쏟아부었다. 연방기금의 사용권까지 허락받은 모건의 지휘 아래 시장은 11월 초부터 안정을 되찾았다. 모건은 정리 과정에서 10억달러의 가치를 지니는 석탄철강회사를 단 4,500만달러에 매입하는 덤을 얻었지만 뉴욕시의 파산도 막아내 ‘월가의 구세주’로 칭송받았다. ‘대부호는 악인들’이라며 반독점법 제정에 열을 올리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조차 모건을 ‘지혜와 공명심으로 행동한 훌륭한 사업가’라고 치켜세웠다. 미국에 중앙은행, 즉 연방준비제도가 생긴 것(1913년)도 민간이 금융위기를 해결했다는 반성 때문이다. 최근 ‘저가매수의 기회’를 강조하는 워런 버핏을 두고 월가의 호사가들은 101년 전 모건과 비교하는데, 글쎄다. 시장규모가 커진 오늘날 버핏이 모건처럼 ‘돈의 홍수’를 일으키려면 수조달러를 퍼부어야 하니까. 1907년 월가의 위기를 두고 홍역처럼 짧은 공황이었다고 하지만 성장률과 재정규모ㆍ주가를 회복하는 데는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