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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12월 12일] 감사의 눈물

SetSectionName(); [토요 산책/12월 12일] 감사의 눈물 최진자 (한글서예가ㆍ서정시학 편집실장)

한 해를 보내면서 누구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면 혼자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주기보다는 받기를 바란다. 한두개 매달려 버티고 있는 낙엽이 꼭 나인 것 같기도 하고, 옆구리가 뻥 뚫린 듯 시린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게 일년의 마지막 달 아닐까. 이런 마음을 위로하려면 살면서 내게 베풀어준 어느 고마운 사람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큰일 당했을때 도움의 손길 받아 오래전 미국에서 몇 년간 체류할 때 일이다. 가로등이 켜진 프리웨이를 달리다 도로 저 멀리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 차들은 서서히 움직이다 멈췄다. 연기만 보이고 상황은 파악되지 않았다. 앞차가 움직이기 시작해 나도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는데 그것도 잠시, 앞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내 차가 그만 앞차 범퍼 밑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래도 다행히 헤드라이트는 깨지지 않았고 헤드라이트와 보닛 사이만 벌어져 있었다. 앞차 주인에게 연락처만 주고 상황은 끝났다. 만약 이게 영화라면 관객들에게 헤드라이트와 보닛 사이의 벌어진 곳을 한번 더 보여줘 암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가 아니니까. 다음날,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카센터를 언제 가야 하지'라는 생각도 잠시. 프리웨이에 접어들어 130마일로 속도를 올리는 순간 보닛이 쾅 하면서 뒤집혀 앞 유리를 덮었다. 급작스러운 일에 당황스러웠지만 사고를 막기 위해 앞으로 똑바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앞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는데 백미러, 아니 고개를 숙이니 윈도브러시 쪽 타원형으로 달 모양으로 생긴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똑바로 가다 마음이 안정돼 백미러를 보니 옆 차선의 어떤 사람이 팔을 차 밖으로 휘저으며 또 다른 옆 차선의 차들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손짓하며 차를 옆으로 빼라고 한다. 그 사람의 도움으로 한 대도 세울 수 없을 것 같은 장소에 차를 세우고 보닛을 내리려 했지만 내 힘으로 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잠시 차 옆에 서 있으니 내 차 때문에 체증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처 방안은 안 떠오르면서 세상에 빚을 지고 말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때 러닝셔츠를 입은 한 백인 아저씨가 유조차를 세워놓고 다가왔다. 나는 그때서야 육중한 유조차가 내 앞에 있는 것을 알았다. 아저씨는 끈을 가져와 보닛을 덮은 다음 고리에 걸어 묶으려 했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내가 그 끈은 약해 안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다시 가서 철사를 가져와 묶어주며 로컬로 내려가 50마일로 천천히 가라고 일러주었다. 정신 없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운전대에 앉았는데 신호등이 있는 곳이 아니라 차선으로 들어가는 것도 문제였다. 그런데 중남미인 같은 사람이 차를 세우더니 나더러 들어가란다. 나는 덕분에 안전하게 들어간 다음 여유가 생겨 룸미러로 뒤를 봤는데 먼 거리에서 아직도 그분이 움직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내 차의 속도가 붙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로컬로 내려와 천천히 움직이며 신호등 앞에 섰다. 고마움 베푼 사람 생각해보길… 눈물도 닦고 나중에는 서러워 실컷 울고 나니 그동안 느꼈던 공포나 미안함, 온갖 잡생각이 말끔히 청소되는 듯했다. 큰일을 당하긴 했지만 세상이 참으로 따뜻해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느닷없이 떠오르곤 하는 따뜻한 세 사람이, 지금은 내 마음에 하얀 그림자가 돼 있다. 충분히 속도가 나도록 멈춰 있는 그 모습으로 머물고 있다. 이웃 때문에 진실로 펑펑 울어본 적도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 행복한 세상을 느끼게 해주신 세 분에게 마음의 메시지를 보낸다.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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