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도입 저지를 내세워 총파업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명분상으로는 의료 민영화 반대를 주장하고 있으나 속내는 의료수가 인상에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같은 입장에는 일부 동네 의원들만 동조하고 있을 뿐 대형 병원들은 반대하고 있어 실제 총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의료 대란'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의사협회는 11~12일 이틀간 서울 용산구 이촌동 협회 본부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각 시도 의사회 임원과 시·군·구 회장 등 대표급 500여명이 모이는 이번 출정식에서 의협은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저지, 건강보험제도 개혁 등 현안에 대해 논의한 뒤 최종 투쟁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의협은 정부에 △원격의료 도입 관련 의료법 개정안 철회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허용 등 재검토 △의-정 위원회급 협의체를 통한 저수가 문제 논의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협의체 구성만 받아들였을 뿐 원격의료 도입이나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에 대해서는 추진 방침이 확고하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영찬 복지부 차관 주재로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대책 실행계획 수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첫 회의를 열었다. 이처럼 정부가 의료산업 발전을 위한 계획을 당초 구상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의협도 총파업을 내세워 강경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의협은 "관치의료를 타파하고 올바른 제도를 세우려는 것"이라고 이번 출정식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의료계의 숙원인 의료수가 인상이 주된 목적이라는 견해가 많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행위의 비용(수가)은 정부와 의사·환자 등으로 구성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결정한다. 수가는 곧 의사들의 수익과 직결되는데 의협이 이번 파업 등 단체행동을 계기로 정부로부터 수가 인상을 얻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의협이 총파업을 확정 짓더라도 당장 병원이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의협 회원들인 전체 의사를 대상으로 파업할지에 대한 찬반투표를 거쳐야 하므로 일러야 이달 말쯤 총파업이 가능하다. 또 전면파업이 아닌 특정한 날을 정해두고 하는 일시파업이나 일부 의사만 참여하는 부분파업이 먼저 이뤄지는 등 단계적으로 파업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의사들이 전면파업에 돌입하더라도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진료가 중단되는 것도 아니다. 병원들이 연합한 대한병원협회는 오히려 영리병원 설립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등 의협과 태도를 달리하고 있다.
의협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동네 의원급에 근무하는 의사는 3만700여명,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4만800여명이다. 의사가 직접 운영하는 의원은 문을 닫고 진료를 거부할 수 있지만 병원에 속한 의사들은 봉급을 받는 형편이기 때문에 병원들이 운영을 계속하는 이상 파업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게 의협 안팎의 시각이다.
한 대형 병원 의료진은 "의사협회 집행부가 파업하려는 의도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적극적으로 동참할 생각은 없다"며 "심지어 일부 대학병원들은 원격진료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이견도 보이고 있는 마당에 철도노조 파업처럼 일사불란한 집단행동은 어려울 것"이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또 다른 대형 병원 관계자도 "의료계가 힘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는 개원 의사와 종합병원 의사 등 다양한 직종에 있는 의사들의 이해관계가 달라 의견 일치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라며 "일부 의사들이 파업에 동조할 가능성은 있지만 대형 병원들이 파업에 동참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파업이 제한적이더라도 동네 의원이 문을 닫을 경우 국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는 만큼 보건복지부는 의협 파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협의 파업을 막기 위해 비공식적인 물밑협상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실제 파업에 돌입하면 비상진료체계 가동반을 운영하고 파업 주도자에 대해서는 형사조치를 취할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