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기업이 늙어간다] 작년 실적 금융위기 때보다 나빠 아시아 꼴찌 … "심각성 몰라 더 문제"

■ 성장 지표 줄줄이 하락

3분기까지 매출증가율 전년 동기비 마이너스

삼성전자 뺀 상장사 순이익도 25.78%나 줄어

하락 속도 가속화 … 투자 환경 조성 서둘러야


BNP파리바는 최근 보고서에서 충격적인 내용을 소개했다. 아시아 기업의 지난해 4·4분기 실적을 지난 11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가장 부진하다는 내용이었다. 4·4분기 실적발표 결과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어닝 쇼크'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는 것. 한국 기업의 평균실적은 전망치보다 무려 12.6%나 모자랐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한국 기업의 성장성 둔화는 2011년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 최근 들어 더욱 빨라지는 모양새다. 전경련 분석에 의하면 국내 상장기업(금융회사 제외)의 지난해 1·4~3·4분기 매출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매출 증가율이 1%대로 추락했던 2009년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 분석에서도 삼성전자를 뺀 상장기업의 지난해 순이익이 36조9,079억원을 기록해 2012년보다 무려 25.78%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냉철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산업전략실장은 "매출액 증가율 지표에서 미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앞서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이상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고의 강도도 세지고 있다. 맥킨지앤컴퍼니는 한국 기업에 대해 "(체력 저하에 따른) 위기에 대해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한국 기업 경영의 현주소'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의 체력이 소진돼가고 있다"며 "대표기업의 착시현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기업을 젊게 할 투자 역시 감소하는 추세다. 단적인 예로 기업의 현금 보유액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김 실장은 "한국 기업이 새로운 경영환경에 직면해 생존 자체의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3년 주요 경영지표, 2009년보다 악화=대기업 A사는 요즘 비용절감이 핫이슈다. 그룹 차원에서 전 계열사에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맬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고위임원은 "올해 수익성이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 그룹 차원의 초강도 비용절감이 시행되고 있다"고 현재의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그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 이면에는 늙어가는 한국 기업이 자리잡고 있다.

전경련이 지난해 1·4~3·4분기 상장기업(1,536개사·금융사 제외)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금융위기 때보다 악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2009년과 2013년 1·4~3·4분기 주요 경영지표를 살펴보면 매출액 증가율, 총 자산 증가율 등 여러 항목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조사에 의하면 총 자산 증가율이 2009년 7.81%에서 2013년 1·4~3·4분기에는 3.04%로 절반 이상 줄었다. 영업이익률도 이 기간에 6.18%에서 5.72%로 감소했고 세전 순이익률 역시 6.31%에서 4.84%로 감소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도 2009년 27.6%에서 지난해 37.6%로 높아졌다. 홍성일 전경련 금융조세팀장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전년에 비해 다소 높아졌지만 기업들 사정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말했다.


한국상장사협의회가 실시한 유가증권시장 223개 기업의 2012년과 2013년 실적비교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삼성전자 1개 기업만 빼도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삼성전자를 뺀 222개사의 영업이익은 55조4,736억원으로 2012년(62조8,080억원)보다 11.67% 감소했다. 순이익은 36조9,079억원을 기록해 2012년보다 무려 25.78%나 줄어들었다. 노근환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한국전력을 제외한 지난해 실적을 2012년과 비교해보면 전체 영업이익이 오히려 줄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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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상무는 "한국 기업의 체력이 2010년을 정점으로 하락하더니 최근 들어 더욱 빨라지면서 그 하락폭이 매우 커지고 있다"며 "그만큼 한국 기업의 체력소진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가속화되는 체력소진, 이상징후 보인다=늙어가는 한국 기업의 더 큰 문제는 최근 몇 년 새 체력이 급속히 저하되면서 고령화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3년간 한국 기업의 경영실적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고령화의 골과 깊이가 예사롭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을 정점으로 한국 기업이 급속히 늙어가고 있다. 734개 상장기업을 분석한 결과 우선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2010년 7.4%에서 2011년 5.8%, 2012년에는 5.2%를 기록해 5%대 초반으로 하락했다. 총 자산 영업이익률 역시 2010년 5.0%에서 2012년 3.4%로 급격히 추락한 상태다. 이렇다 보니 2012년 기준으로

매출액 증가율이 미국 기업 등 해외 주요 기업보다 악화된 상태다. 아울러 고성장 기업(5년간 연평균 성장률 10% 상회) 비중이 2010년 16%에서 2011년 11%, 2012년 9% 등으로 하락하는 등 주요 경영지표가 일제히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태다. 외형적 측면뿐만이 아니다. 사업 측면에서도 신사업 진출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며 "문제는 점차 체력이 소진되면서 끓는 물에 있는 개구리처럼 기업들이 이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은 "2013년 잠정실적을 보면 SK그룹 등 주요 그룹에서 적자 계열사가 새롭게 생겨났고 그 숫자도 커진 것이 현실"이라며 "그만큼 한국 기업 성장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말했다.

◇투자유인책 등 환경조성 절실=삼성그룹이 최근 마하경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도 한계점을 분석한 뒤 다시 한번 재도약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삼성그룹 역시 전자와 휴대폰 등 몇 개 종목과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냉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는 것이 재계의 설명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늙어가는 한국 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함께 어울려야 한다"며 "이런 점에서 정부가 우리 기업이 처한 현실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대응책을 마련해주는 것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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