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촌으로 들어갔다. 좁은 비탈길 옆으로 녹슨 양철과 진흙으로 만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가난한 거리였다. 주천기 가톨릭대 교수(서울성모병원 안센터장)는 2009년 11월말 그렇게 훌쩍 아프리카로 봉사 활동을 떠났다. 케냐의 환경은 눈에 해로웠지만 안과의사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3,800만 명 케냐 인구 가운데 안과의사는 83명뿐이었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의 분비물이 건조한 모래 바람과 뒤섞여 어린이들의 눈을 찔렀다. 빈민가를 다니며 그런 아이들 중에서 치료 가능한 아이들을 골라 수술에 들어갔다. 책은 현직 안과의사가 의료 봉사를 하는 삶에 대한 담담한 고백과 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기억을 담은 자서전이다. 저자는 2년 전 김 추기경 선종 후 고인의 안구적출 수술을 집도한 담당 의사다. 주 교수는 "세상을 밝히는 의사가 되라, 등불이 되라"고 부탁했던 고 김 추기경의 당부를 잊지 않았기에 가능한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당시 김 추기경이 남긴 눈은 2명의 환자뿐 아니라 자신의 닫힌 마음도 뜨게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고인이 선종하기 몇 년 전 주 교수는 눈을 진찰한 뒤 "큰 이상은 없지만 눈을 너무 혹사하셨습니다. 소중하신 분이니 건강에 더 조심하셔야죠"라고 말했다. 그의 조언에 돌아온 김 추기경이 답변은 뜻밖에도 "죄스럽다"였다. 자신의 눈 또한 주님이 살아있는 동안만 잠시 맡겨둔 것인데 혹사시킨 게 죄송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추기경은 자신의 눈을 잘 관리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언젠가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의 눈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빛을 줄 수 있도록 잘 관리해 달라는 말이었다. 주 교수는 추기경의 고귀한 뜻을 거역할 수 없었고 자신의 삶이 달라질 것을 예감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최고의 의사가 될 수 있을까 보다는 어떻게 해야 남에게 가장 많이 베푸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봉사하는 현재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1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