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저성장 시대 다음은


정부가 제시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3.7%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이 전망치도 달성하기 힘들 것으로 보며 내년은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기준금리는 2.0%까지 내려갔고 은행 예금금리는 1%대까지 떨어졌다. 저성장·저금리 시대라는 말이 곳곳에 넘쳐나는 이유다.

문득 저성장 시대는 언제까지 갈지 궁금해진다. 가계·기업·정부 등 경제주체가 온 힘을 기울여 언제 저성장 시대를 끝내고 다시 고성장의 과실을 맛볼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 그나마 저성장이라도 성장은 하고 있는 이 시대가 저물고 수축하는 역성장의 시대가 가까운 미래에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빅크런치는 우주의 종말을 가리키는 천문학 용어로 팽창하던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하기 시작해 결국 한 점으로 모인다는 우주 모형이다. 빅크런치는 우주를 설명하는 여러 이론 중 하나로 실제로 그럴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구로 눈을 돌리면 불행히도 빅크런치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일본은 지난 6월 연금을 물가상승률과 연계해 매년 0.9%씩 삭감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물가상승률이 0.5%면 삭감률은 그만큼 뺀 0.4%가 된다. 물가가 0.5% 내리면 다음해 연금은 1.4% 줄어든다. 연금에 의지해 사는 사람에게 매년 적어지는 연금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일본은 1990년부터 25년째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거의 마지막 시도인 듯 보이는 아베노믹스가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이 점점 세를 불려가고 있다.

성장 한계에 역성장시대 진입 눈앞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서구형 국가로 성장한 일본이 25년간의 불황 끝에 수축의 길로 접어든 신호가 적어지는 연금은 아닐까.


일본이 가는 길은 지구에 있는 모든 나라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홍성국 KDB대우증권 사장은 '세계가 일본 된다'라는 저서에서 "그리스 등 남유럽은 물론 프랑스·영국 등 북유럽, 그리고 미국까지 정도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본을 닮아가는 일본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2008년을 기점으로 세계가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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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현대중공업이 최근 20년 만에 벌인 파업을 보면 우리가 성장 사회에서만 생존할 수 있게 적응해왔음을 알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영업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직원은 열심히 배를 만들어 매번 더 나은 실적을 냈고 회사는 그때마다 후한 임금 인상으로 보답했다. 지난 20년간 파업이 없었던 이유다. 그런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4·4분기 첫 영업적자를 낸 뒤 올 들어 분기마다 막대한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사측이 눈덩이 영업적자 상황에서 노조에 제시한 임금인상안은 기본급 3만7,000원(호봉승급분 2만3,000원 포함) 인상, 격려금 100%(회사 주식으로 지급), 300만원 지급 등이다. 노조는 인상률이 낮다며 임금인상안을 거부했다. 지난 20년간 고율로 오르기만 한 임금에 적응한 노조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저율의 임금인상안에 대한 반응이 파업이면 앞으로 임금삭감안이 제시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우리는 조만간 현대중공업 노조를 덮친 것보다 더 심한 환경변화를 겪을 수도 있다.

우리도 예외 안돼, 대책 서둘러야

그것은 줄어든 임금이나 연금일 수도 있고 도심에서 더 멀어지고 더 작아진 집으로의 이사일 수도 있다. "하루 세 끼 밥이야 굶을까"라고 쉽게 말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하루 세 끼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결국 강해야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처럼, 환경변화에 적응해 진화한 생물만 살아남을 것이다.

지난 세월 고성장을 거쳐 저성장 시대로 진입한 것과 똑같이 앞으로 저성장에서 무성장으로, 무성장에서 역성장 시대로 옮아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일본이 인구 1억명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듯 우리가 인구 4,000만명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할 날도 머지않았다.

저성장 시대에 대한 준비는 그대로 진행하되 하루빨리 무성장·역성장 시대를 대비한 연구와 논의에 나서야 한다.

한기석 증권부장 hank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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