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사브(Saab)의 신형 스포츠세단 ‘9-3 에어로’(2006년형)를 만났다. 정갈한 기품의 검정색 차체가 단아하다.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디자인에서 사브만의 절제 미학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쐐기 모양의 측면 디자인이라거나 일체형 그릴로 포인트를 주어 스포츠 세단만의 역동적인 느낌을 살린 점이 멋스럽다. 외관을 찬찬히 뜯어보고 난 후 실내 디자인을 보고 싶다는 조급증에 몸을 운전석에 실었다. 시트 양측면의 지지대가 옆구리와 허리선을 단단히 감싸안으며 편안한 착석감을 유도한다. 실내 인테리어의 빛깔은 외관과 동일하게 처리돼 마치 상하의 색깔을 맞춰 멋을 낸 세미 정장을 보는듯 하다. 편의 장치는 역시 동급의 경쟁차종들 못지 않다. 좌우를 독립적으로 온도조절할 수 있는 전동시트와 보다 쉬운 주차를 돕는 전후방 감지기, 야간 운전을 위한 나이트 패널 등의 고급 장비들이 장착됐다. 또 도난경보장치와 비의 양을 감지해 자동조절되는 레인센싱 와이퍼 등도 차량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조수석 탑승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팝업형 컵 홀더라거나 센터페이시아 중앙 상단에 굴곡을 주어 각종 주행정보를 표시하도록 한 디스플레이 장치도 재미있다. 세세한 부분에서도 탑승자들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기발함과 세심함이 느껴진다. 잠시 디자인 감상에 빠졌던 마음을 추스르며 시동키를 돌려본다. 생기를 엊은 엔진이 바리톤풍의 묵직한 중저음을 토해낸다. 스포츠세단을 모는 운전자에게 잘 조율된 엔진음을 듣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 속도 구간이 달라질 때마다 다양한 음색을 토해내는 엔진의 쉼결은 그야말로 천상의 하모니다. 가속 패달에 발을 얹는 순간 ‘아차’ 싶었다. 빨리 차량을 구동시켜보고 싶다는 조바심에 가속 패달을 밟는 데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쏜살 같은 출발에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자동차 터보엔진의 원조로 불리는 사브가 심혈을 들여 개발한 신형 엔진의 괴력을 잠시 망각한 벌이다. 9-3에어로의 심장은 2.8리터급 V6 터보엔진. 최고 출력은 무려 250마력(5,500rpm 기준)에 달하며 토크 역시 최대 35.7kgㆍm(2,000rpm 기준)에 이른다. 동급의 상위 경쟁차종인 BMW530i나 메르세데스-벤츠 E280, 아우디 A4 3.2 TFSI콰트로를 훨씬 상회하는 토크를 낼 정도로 엄청난 폐활량을 지닌 것이다. 마치 외모는 정숙하지만 끓어오르는 내면의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는 ‘요부(妖婦)’를 보는 듯하다. 스피드에 목 마른 이 요부가 고속주행의 엑스터시를 느껴보라며 운전자를 자꾸만 유혹한다. 고속 주행을 위해 차량이 한산한 새벽길을 달려보았다. 주행의 느낌을 두 마디로 표현하자면 ‘밟는데로 나간다’라고나 할까. 특히 시속 80km에서 120km구간의 미들레인지 속도구간에선 여태껏 타본 명차들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 싶을 만큼 부드럽고 강력한 가속능력을 발휘했다. 도로 위를 달린다기보다는 날아간다는 표현이 차라리 더 정확할 것이다. 주변의 자동차 메니아로부터 “사브는 절대로 질리지 않는 재미로 가득찼다”라는 평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