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은 노후 주택이 밀집해 있다는 이유로 재개발될 수 있도록 규정한 경기도 조례가 무효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특히 원고와 피고 모두 상고를 포기하면서 해당 판결이 최종적으로 확정됨에 따라 유사한 조례를 기초로 활발하게 진행돼온 지방자치단체 재개발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고법 행정4부(부장판사 윤재윤)는 안양시 주민 84명이 경기도지사와 안양시장을 상대로 낸 주거환경개선사업 정비구역지정처분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심대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노후ㆍ불량 건축물이 전체의 50% 이상이면 정비 대상 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경기도 조례는 상위 법령인 도시정비법 시행령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노후ㆍ불량 건축물 비율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건축 연수 기준을 따르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건축물대장에서 20년이 지난 건축물을 대상 건물로 선정해 정비구역 지정 처분 요건을 충족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각 정비구역이 지난 2007년 3월 지정됐는데도 사전조사는 1년9개월, 예비평가는 1년11개월 뒤에 이뤄진데다 적은 인력이 광대한 면적을 단기간에 제대로 조사, 평가했다고 보기 힘들다. 사업이 그대로 진행되면 원고들의 토지와 건축물이 강제로 수용당해 막대한 불이익을 입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는 2007년 3월 경기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에 따라 안양시 만안구 12만8,600여㎡와 인근 19만2,900여㎡ 부지를 냉천지구와 묶어 새마을 주거환경개선사업 정비구역으로 고시했다.
조례에 따르면 노후ㆍ불량 건축물 수, 무허가 건축물 수, 호수밀도 등의 요건 가운데 하나의 요건만 충족하면 주거환경 개선사업 정비구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상위 법령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은 조례를 통해 해당 요건의 세부사항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이들 가운데 한 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재개발을 허용하도록 하고 있지 않다.
최씨 등은 정비구역 지정 처분은 부당하다며 건설교통부장관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여 "경기도 조례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시행령 규정보다 완화된 것으로 시행령 위임 범위에서 벗어나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어 "철거가 불가피한 건축물인지를 판단하지 않고 단지 건축 시기를 기준으로 1985년 6월 이전의 건축물을 모두 노후ㆍ불량 건축물로 분류한 것은 위법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6월 서울시 행당동 주민들 역시 재개발 구역 지정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 서울시 조례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시행령이 위임한 범위를 벗어나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해 이번 판결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