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이공계대학인 카이스트에서 학점 취득을 위해 병원진단서를 조작한 학생들이 대거 적발됐으나 학생과 학부모들이 처벌에 반발하고 학교 당국도 유야무야 넘어간 사건이 발생했다. 카이스트는 지난해 12월 경제관련 교양과목에서 병원진단서를 제출해 출석점수를 얻은 학생 22명 전원이 진단서를 위조했을 뿐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동일한 위조 수법이 동원됐다는 점까지 밝혀냈으나 30일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를 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조사가 진행되자 일부 학생들은 '중∙고교에서는 이런 일 갖고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는데 대학에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반발하고 일부 학부모까지 여기에 가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카이스트의 한 학생은 "극히 일부가 반성을 기미를 보인 가운데 처벌이 전혀 없어 '유력한 집안의 자제들이 포함돼 문제가 커지지 않았다'는 소문이 학내에 돌았다"며 "올 초 발생한 학생 자살 사건에 묻혀 사안이 흐지부지 종결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학교 당국은 이에 대해 "일부에서 진단서 위조 사실 논란이 일어 사안을 조사해 같은 유형의 부정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고 있다"며 "유력 학부모를 의식해 처벌하지 않았다는 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건강진단서까지 위조한 부정행위는 비단 카이스트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학점 관리가 철저한 대학일수록 문서 위조가 극심한 편이다. 인터넷에서 병원진단서 작성 프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역시 잘 알려지지 않고 넘어갔지만 지난해 말 한 명문대에서는 출석점수를 따기 위해 조부모의 사망진단서를 위조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 확산된 스마트폰으로 무궁할 정도로 다양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부정행위까지 예고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 솜방망이 처벌과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의 대물림 현상이다. 우선 중∙고교는 물론 대학까지도 우수학생의 장래를 위한다며 부정행위를 눈감아주는 분위기지만 외국 대학 같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다. 문서 위조건이라면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범죄로 간주돼 중징계 감이다. 학부모가 합세한 부정행위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학점이 날로 중시되면서 대학 당국은 자녀의 컨닝으로 인한 불이익과 처벌에 항의하는 학부모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가고 학점만 잘 받으면 그만'이라는 부모들의 사고방식은 삐뚤어진 사고방식과 특권 의식에 젖은 학생을 낳고 이들은 결국 반성하지 않는 사회 지도층으로 성장하기 십상이다. 송인석 숙명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극심한 경쟁체제 아래 중∙고교 시절부터 생활기록부와 비주력 과목의 성적 등에서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집중되는 특혜가 그릇된 특권 의식과 도덕적 해이로 굳어진 사례"라며 "결과를 위해 과정을 무시하는 몰가치화 현상은 학생들 개개인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졸업 뒤 진출하게 될 사회에도 전이돼 결국 사회 전체의 혼탁도가 더욱 심해질 것"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