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올해부터 과학고나 영재학교 입시에서 경시대회 수상실적을 반영하지 않도록 하면서 올림피아드 응시자가 크게 줄어든 데 대해 교육 및 과학계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올림피아드는 기초과학 분야에 진출할 과학영재를 조기 발굴, 육성하기 위해 실시되고 있는데 사교육을 잡으려다 자칫 과학영재 교육이 황폐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22일 학원계에 따르면 올 들어 수학ㆍ과학 올림피아드 등 각종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중학생 수강생 수가 크게 감소했다.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대치동의 일부 경시대회 준비 전문학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시반 학생들이 절반가량 감소했다. 일부 학원은 경시반을 아예 없애고 내신 위주로 교육과정을 바꿨다.
H수학학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방에서도 문의가 오고 직접 방문하기도 했는데 올 들어서는 문의가 거의 없다"면서 "입시에 반영되든 안 되든 경시대회 수상실적이 이제는 필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P수학학원의 한 관계자도 "경시대회 준비반을 운영하지 않아 지난해까지만도 일부 학생ㆍ학부모들이 별도의 경시반 프로그램을 요구했지만 지금은 예전의 절반도 안 된다"면서 "특목고 입시에서 내신 비중이 커졌는데 경시대회를 준비하면 아무래도 내신 공부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줄어든 것은 올해부터 과학고 입시에서 경시대회 수상실적 등 이른바 '스펙'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증가했던 중학생 올림피아드 응시자도 올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수학 올림피아드 응시자는 1만4,736명에서 올해 9,247명으로 5,000명 넘게 줄었다. 물리와 화학 올림피아드 응시자도 지난해보다 각각 36.6%와 41.4% 감소했다.
경시대회 준비반의 월 수강료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치동의 경우 50만~70만원에 이른다. 실제 경시대회 수요가 감소하면서 어느 정도 사교육비 경감 효과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경시대회 무력화'가 과학영재 교육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시대회가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에 대한 흥미도를 높이고 수학자나 과학기술인이 되겠다는 동기를 부여했는데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기초과학의 싹을 잘라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도한 대한수학회 회장(서울대 수학과 교수)은 "이스라엘은 수학올림피아드 상위 1%를 대상으로 영재교육을 시키고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올해 수상자 4명이 모두 올림피아드 출신"이라면서 "경시대회 응시자 수를 줄여 사교육을 잡겠다는 정부 정책은 단견"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고교생들은 올해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지난해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화학과 물리는 각각 2위와 11위였다. 중국은 모든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경시대회 수상실적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면서 과열 양상을 빚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전국의 중학생 200만명 중 경시대회를 보는 학생은 2%도 채 안 된다"면서 "이들 일부가 경시대회를 안 본다고 사교육비가 얼마나 줄어들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