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6일] 아스피린

1899년 3월6일, 독일 베를린 특허국이 프리드리히&바이엘사에 상표등록증을 내줬다. ‘아스피린’ 상용화의 출발점이다. 최고의 제약회사로 올라선 바이엘의 당초 사업영역은 섬유와 염색. 석탄의 부산물인 타르를 이용하는 바이엘의 염료는 색상이 곱기로 유명했다. 제약사업도 염료에서 나왔다. 염료의 폐기물을 이용한 해열진통제 제조가 가능하다는 점을 발견한 바이엘은 1888년 의약품 사업부를 신설하고 약품 생산에 들어갔다. 1891년부터는 과학연구소를 설립, 본격적인 신약연구에 착수했다. 아스피린은 당시 민간기업으로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었던 연구투자의 결과물인 셈이다. 아스피린 가루약이 성공을 거두자 유사품이 쏟아져 나왔다. 품질향상과 모조품 방지를 위해 바이엘이 개발한 게 알약. 아스피린 알약은 생산원가도 절반으로 떨어뜨렸다. 덕분에 마약환자도 줄어들었다. 술과 아편, 모르핀에 의존하던 두통환자들은 값싸고 강력한 아스피린을 찾았다. 잘 나가던 바이엘은 1차대전으로 난관을 맞는다. 전승국들은 독가스 원료를 제조한 공장을 12개로 분할했다. 전쟁배상금 명목으로 ‘바이엘 아스피린’이라는 등록상표도 미국회사로 넘어갔다. 바이엘사는 1995년에서야 상표를 되찾아왔다. 최근 구조조정을 겪으면서도 바이엘은 전세계 350개 지사에서 종업원 11만3,000명이 매출 298억유로(2004년 기준)를 올리고 있다. 바이엘사의 부침과 아랑곳없이 아스피린의 신화는 계속될 것 같다. 모르고 있었던 약효가 속속 규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열진통은 물론 심장질환과 각종 암에도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부작용과 내성도 크지 않아 ‘신비의 약’으로도 불린다. 100년이 넘은 세월을 이겨낸 아스피린 같은 약품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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