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황철상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

단백질 수명 결정과정 규명… 유전질환 치료에 새빛

단백질 분해신호 작용하는 아세틸·메티오닌 밝혀내

제약·화학분야에 연구 적용… 고혈압 등 치료제 개발 기대

황철상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가 실험실에서 실험물질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연구재단

단백질의 운명을 좌우하는 메티오닌 구조

많은 사람은 운명을 점치기 위해 사주팔자나 관상을 본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어느 정도 결정돼 있다는 전제를 믿기 때문이다. 믿음에 대한 증거는 없다. 단순 재미든 확실한 신뢰든 운명을 점치는 행위는 논리와 무관한 비과학적 영역이다.

하지만 운명을 예측하는 과학자도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11월의 과학기술자상 수상자로 선정된 황철상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물론 인생을 점치는 과학자는 아니다. 황 교수는 대신 단백질의 운명이 분해신호를 통해 어떻게 결정되는지 밝혀냈다. 단백질의 수명만 조절할 수 있다면 각종 유전성 질환 치료도 가능해진다.


◇단백질 분해경로를 찾다=황 교수의 연구는 우리 세포 안에 수백 개씩 포진한 각각의 단백질이 왜 서로 다른 수명을 갖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우리 몸의 DNA는 20개의 아미노산과 조합돼 다양한 단백질 형태로 변형ㆍ보존되는데 적절한 시기에 합성ㆍ분해돼야만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있다. 수명이 다한 단백질에는 유비퀴틴이란 또 다른 단백질이 작은 꼬리표처럼 달라붙고 프로테아좀이란 단백질이 이를 감지해 죽인다.

기존에는 단백질 결합방향의 한쪽 끝에 자리한 아미노그룹, 'N말단'에 몇 가지 아미노산이 오는 것이 단백질 분해신호라는 것 정도만 밝혀진 상태였다. 이는 모든 단백질 분해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아니었다. 황 교수는 28년간 제자리걸음을 하던 단백질 분해 메커니즘 이론을 아예 출발점부터 달리 봤다.

황 교수는 지난 2010년 N말단에 아세틸이 결합되는 것이 단백질을 분해하도록 하는 신호라는 것을 알아냈다. N말단에 몇 가지 아미노산이 오는 것과 무관하게 아세틸화만 진행되면 이것만으로도 단백질 수명은 끝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세틸화로 설명이 가능한 단백질은 전체의 80~90%에 불과했다. 황 교수는 이에 추가 연구를 진행해 나머지 10~20%의 단백질은 N말단에 메티오닌이라는 아미노산과 물과 섞이지 않는 소수성 아미노산이 연속해서 자리할 때 이것이 분해신호로 작용한다는 점을 규명했다. 단백질 합성 때부터 서열의 맨 앞에 오는 메티오닌이 해당 단백질의 운명까지 쥔 신호라는 것을 밝힌 셈이다. 황 교수의 연구성과는 올해 생명과학 분야 권위지인 셀(Cell)지에 발표됐다.


황 교수는 "단백질의 운명이 물론 환경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합성될 때부터 메티오닌에 의해 이미 어느 정도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80~90%의 단백질은 아세틸화에 의해 결정되지만 나머지는 메티오닌만으로도 운명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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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성 질환, 단백질 수명 조절로 치료 가능=그의 연구 결과는 앞으로 노화, 암, 퇴행성 신경질환 등 각종 유전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단백질 분해경로를 찾은 만큼 필요한 단백질은 아세틸화 진행이나 메티오닌 인식을 막아 활성화를 유지하고 반대로 불필요하게 응집ㆍ누적된 단백질은 분해할 수 있는 치료제도 충분히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현재 이와 관련한 고혈압 증상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황 교수는 "유전성 질환은 단백질이 타고난 운명대로 살다 죽지 않고 환경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변형되면서 나타난다"며 "연구 결과가 화학ㆍ제약 쪽으로 연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대기만성 과학자의 표본이다. 전남 흑산도가 고향인 그는 시골에서 자연스럽게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에 1990년대 학번 학자 가운데는 드물게 박사과정까지 모두 국내에서 마쳤다.

유명한 석학 밑에서 연구를 시작한 유학파에 비해 출발이 다소 뒤처졌던 셈이다. 13년간의 학위 과정을 마치고 2003년 뒤늦게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원으로 갔지만 기존 이론의 후속 연구만 진행하다 2008년이 돼서야 첫 논문을 냈다.

황 교수는 과학자로 살아남기 위해 지금의 연구과제에 도전했다고 소개했다. 늦은 출발이었음에도 기존 단백질 분해신호 이론 자체에 물음표를 던진 과감성이 현재 자리에까지 있게 한 셈이다. 그는 "남들에 비해 뚜렷한 연구성과를 내지 못할 때는 내가 걸어온 길을 후회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그런 어려운 과정이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논문을 5편이나 잇따라 발표하는 성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황 교수는 최근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학부 학생 중 너무 많은 수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다면서 크게 안타까워했다. 황 교수는 "생명과학과가 의전 양성소로 변질되고 있어 인력 구하기가 상당히 힘들다"라며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은 유행을 좇기보다 미래에 대해 믿음을 갖고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창의적으로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N말단 규칙의 상보성

단백질 합성 개시신호인 N말단 메티오닌(M) 다음에 물과 섞이지 않는 소수성 잔기가 오면 아르기닐화 N말단 규칙에 의해 단백질이 분해되고 아세틸화가 되더라도 아세틸화 N말단 규칙에 의해 단백질이 분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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