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외교무대에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다만 국익만 있을 뿐이다`
이라크전이 종결되기도 전에 이라크 전후 통치 및 임시정부 구성, 재건사업, 석유자원 처리 등을 둘러싼 세계 열강들의 외교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ㆍ영 연합군은 물론
전쟁을 반대했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까지 가세해 실리 확보를 위한 치열한 샅바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것.
◇전후 통치 및 임시정부 구성 작업 궤도 진입=미국과 영국은 바그다드 대공세를 앞둔 가운데 7일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총리간 정상회담을 갖고 전후 이라크 통치 및 임정 수립 문제를 폭 넓게 협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 가디언은 6일 인터넷판을 통해 미국은 빠르면 8일 이라크 임시정부를 설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영국은 현재 사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한 뒤 자유 이라크 정권을 새로 수립해 미ㆍ영 주도 아래 군정을 실시, 연합군 중심으로 이라크를 재건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은 친미 정권 수립을 통해 중동 질서를 재편한다는 목표도 꾸준히 밀어 붙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전에서 승리, 군정 아래 친(親) 서방 정권을 구성하고 세계 2위의 이라크 석유자원을 장악하게 될 경우 중동 지역의 세력 균형은 물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향후 석유시장의 질서 재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쟁 반대 국가, UN 중심의 전후 처리 강조=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반전 3개국은 지난 4일 파리에서 3국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이라크 전쟁 이후 현안 해결 과정에서 UN이 중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도 이에 뒤질세라 이날 베이징을 방문한 유리 페도토프 러시아 외무차관과 양국 외무차관 회담을 갖고 전후 이라크 문제 처리에 UN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이들 반전 국가들이 한 목소리로 UN 중심의 전후 처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라크 통치 및 임시정부 구성, 재건사업, 석유자원 처리에 있어서의 미ㆍ영 독주를 견제
함과 동시에 국익 확보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사 표시로 해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은 “이라크 전후 처리에 중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은 UN 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며, 독일의 요시카 피셔 외무장관은 “UN만이 전후 처리 절차를 합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ㆍ영에 대한 유화 제스처 잇따라=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 반전 핵심 국가들은 UN 중심의 전후 처리를 강조하면서도 미ㆍ영 연합국의 `우선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한 자세다. 이에 따라 이들은 최근 들어 반전 공세수위를 낮추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 추파를 던지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실제 독일의 게르하르트 쉬뢰더 총리는 그 동안 일관되게 견지해온 반전 입장에서 물러서 미ㆍ영 연합군의 이라크전이 하루 빨리 종결되기를 바란다면서 종전 후 이라크에 파병될 UN 파견군에 독일군도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프랑스는 이라크전을 반대했던 것은 반미주의에 따른 것이 아니며 프랑스는 미ㆍ영 연합군의 승리를 바란다는 뜻을 수 차례 피력하고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최근 프랑스, 독일 등 반전 국가들의 행보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국익이 최우선 한다는 외교 원칙을 다시 확인해 준 것”이라면서 “국익을 확보하기 위한 세계 열강들의 외교전은 갈수록 치열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구영기자 gy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