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는 과거 20년간 누렸던 고성장세가 반토막 나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 매르스크라인의 소렌 스코우(49ㆍ사진) 최고경영자(CEO)가 글로벌 해운업계에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해운업 부진은 경기둔화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 무역판도 변화가 만들어내는 장기 추세의 서막이다.
스코우 CEO는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선진국 제조업체들의 생산기지 'U턴' 현상이 글로벌 해운업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아시아 신흥국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만든 값싼 공산품을 사들였던 미국·유럽연합(EU) 등이 제조업체들의 본국 회귀(리쇼어링)로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을 소비하게 됨에 따라 구조적으로 해양운송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전세계 화물수송의 80%를 담당하는 해운업계에 교역량 감소는 실적악화의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바나나처럼 해외무역을 통해서만 거래할 수 있는 상품들은 현재 보유한 배로도 충분히 실어 나를 수 있다"며 "전세계 컨테이너 수송시장은 공급과잉 상태"라고 지적했다.
스코우 사장은 이에 따라 앞으로 전세계 해운시장에 연 4~5% 정도의 저성장이 고착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전 연 10%에 육박했던 고성장세와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그는 "이제는 해운업계가 저성장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매르스크라인도 비용절감을 통한 이윤확보에 치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해운업계는 지속되는 수요감소에 따른 운임비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상하이발 세계 각 노선의 평균 운임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기준으로 올 2·4분기 유럽항로 운임은 1TEU(20피트 컨테이너 1대)당 781달러로 전년비 무려 55% 이상 폭락했다. 미국 서부와 동부항로 운임도 각각 15%, 10%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해운업계는 선박 초대형화, 해운동맹 결성 등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수송량 기준 세계 해운시장의 15%를 차지하는 매르스크라인의 경우 노후 선박 퇴역을 앞당기고 경제성ㆍ에너지효율성ㆍ친환경성을 갖춘 '트리플 E급' 선박을 대거 투입해 운송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다. 지난달 마에러스크라인이 2·3위 해운사인 MSC, CMA CGM과 'P3'로 명명된 해운동맹을 체결한 것도 해운사 간 공조를 통해 선박 과잉공급을 피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운업계의 자구노력이 저가운임 경쟁을 부추기고 대형선박 확보를 위한 자금압박을 심화시켜 결국 업계 재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