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승웅 휴먼칼럼] 노인들의 합창

미 하와이주 출신 국회의원들의 평균수명은 타주 정치인들보다 훨씬 짧다. 수년전 미 전우(戰友)신문격인 성조지(THE STARS AND STRIPES)에 게재됐던 기사 내용으로 이유는 시차(時差) 때문이다.호놀룰루를 떠난 하와이 의원들이 수도 워싱턴의 연방의회에 출석하기 위해서는 장장 10시간 이상을 여객기 안에서 보내야한다. 이 기간동안 시차만 6시간 바뀐다. 호놀룰루의 정오는 워싱턴 시간으로 같은 날 오후6시다. 하와이주 의원들의 평균 수명이 짧은 것은 바로 이 시차 극복에 실패했거나 극복하더라도 그 후유증이 장시간 누적돼 건강을 해쳤을 때문으로 그 기사는 진단했다. 이 기사대로라면 인간의 수명과 시차는 유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논리대로라면 미국을 밥먹듯 왕래하는 한국의 비즈니스맨들은 조심해야한다. 특히 나이 지긋한 노·장년층 비즈니스맨들은 각별히 조심할 일이다. 문제는 수명과 시차와의 이런 관계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을까. 오늘로 우주비행 7일째를 맞는 존 글렌 미 상원의원(77·오하이오주·민주)의 여행목적이 바로 그 대답이다. 인간의 수명(또는 노화)과 시차와의 관계 규명을 위해 그는 77세의 노구를 국가에 선뜻 헌납한 것이다. 비단 노화와 시차간의 관계규명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노화와 평형감각, 노화와 뼈의 근육, 노화와 심장 및 혈관 등 간의 관계도 아울러 검증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지구를 벗어나면 건강한 승무원도 노화증상을 나타낸다. 뼈의 근육은 퇴행증세를 나타내며 평형감각을 잃어간다. 심장은 작아지고 박동은 약해지며 수면장애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노인의 육체일 경우 그런 상황에서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글렌이 노구를 던진 것은 바로 이 반응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무중력 상태는 노화과정을 촉진하는가 아니면 노화를 단지 모방할 뿐인가를 규명하기 위해서다. 이번 글렌의 용단으로 평형감각 하나만 건진다 치자. 현재 미국에서 만성평형감각 장애로 고통을 받고 있는 1,250만명의 노인들이 병상이나 휠체어 신세를 면하게 된다. 또 뼈와 근육의 관계가 규명될 경우 골다공증으로 고통받는 전세계 노인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다시 우주로 달려간 글렌의 이번 용단을 흔히들 생각하듯 36년전 첫 우주선에 오르던 명성의 회복 때문으로 평가해서는 삭막해진다. 노구 하나를 던져 수백 수천만명의 다른 노인들을 건지려는 「그레이 양키즘」이 정답일 것이다. 미 상원의원은 흔히 100명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 정도로 엄청난 권위와 명성을 구가한다는 얘긴데, 글렌은 이번 등정훈련을 받는 기간중 미 항공우주국(NASA)직원들에게 자신을 상원의원이 아닌 존으로 불러 줄 것을 계속 고집했다. 그 정도로 서민적이고 다감한 성격을 지녔다. 또 소년시절 동네 학교에서 제일 즐겨했던 놀이의 상대는 심한 말더듬이로 교실에서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던 동갑네기 여학생 애니 캐스터였다. 글렌은 『나는 애니가 어떤 여성인지 정확히 알았기 때문에 그녀와 결혼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애니 마저 남편의 이번 출정을 대놓고 반대했다. 62년 첫 우주비행에 나선 남편의 「프랜드쉽」호(號)가 대기권 재진입시 다 타버린 무서운 악몽을 지닌 탓이다. 77년 봄 그가 살고 있던 집에 강도가 든 적이 있다. 글렌은 놀란 아내의 곁을 지켜주느라 두문불출, 근 한달 동안 의사당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당시 그의 의원사무실에서 인턴십을 갖도록 돼 있던 나의 수학(修學)계획은 그 일로 모두 무산됐지만, 아내를 아끼고 위하는 한 미국 정치인의 치성이 내게 무척 신선하게 와 닿았던 걸 기억한다. 이번 등정은 그런 아내의 간청마저 무시된 채 치러졌다. 우주 노병의 이번 두번째 출격을 생중계하던 미 원로 방송인 월터 크롱카이트의 찬사가 인상적이다. 『나는 글렌이 (우주비행사로) 선정된데 대해 전화를 걸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했다. 내 나이가 더 많기 때문에 내가 적임자였다』고 밝힌 크롱카이트는 『영웅이 드문 시대에 그는 진정한 미국의 영웅이었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 찬사가 내게 빈 말로 들리지 않는다. 아울러 글렌부부와 크롱카이트 이렇게 셋이서 지르는 주장이 내겐 미국의 합창으로 들린다. 이제 세기가 바뀌면 더이상 듣지 못할 아름다운 노인들의 합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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