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KB사태 촉발 '주전산기' 결국 원점 재검토

'IBM-유닉스' 사실상 재입찰… 이건호 前행장 주장 관철된셈

임영록 "訴취하·등기이사 사퇴"… 차기회장 선임작업 탄력 붙을듯

단순 손실만 수백억… 직원들 "분노"

/=연합사진


KB사태 촉발 '주전산기' 결국 원점 재검토
'IBM-유닉스' 사실상 재입찰… 이건호 前행장 주장 관철된셈임영록 "訴취하·등기이사 사퇴"… 차기회장 선임작업 탄력 붙을듯단순 손실만 수백억… 직원들 "분노"

윤홍우·신무경기자 seoulbird@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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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과 내년 7월 계약 만료… 기기 전환하면 최소 13개월

결정 지연땐 대규모 위약금

금감원 10월 제재 개선안 발표

KB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됐던 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와 관련해 국민은행이 'IBM 메인프레임'과 '유닉스' 시스템을 사실상 재입찰에 부친다.

지난 5월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금융감독원 고발로 KB 사태가 터진 후 치열하게 대립했던 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가 결국은 원점에서 재검토되는 것이다.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그동안 유닉스 시스템으로의 전환 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주장해왔지만, 결국 낙마한 이 전 행장의 주장이 관철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대표이사 직무집행정치 처분 취소소송 및 집행정지 신청을 29일자로 취하하고 등기이사직도 사퇴하기로 해 차기 회장 선임작업 등에 속도가 붙게 됐다.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주전산기를 기존대로 IBM 메인프레임으로 유지할지, 아니면 이사회에서 추진한 대로 유닉스로 교체할지를 놓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유닉스 시스템을 이용하는 업체들도 단가를 제대로 써내지 않는 등 불합리한 측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재입찰에 나서는 것"이라며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내년 하반기부터 IBM에 위약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다음달 안에 선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는 KB 사태를 촉발시킨 직접적 원인이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임시 운영위원회를 거쳐 차기 주전산기로 기존 IBM 메인프레임 대신 유닉스를 선정하고 올 4월 이사회에서 주전산기 전환 안건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전 행장과 정병기 감사가 유닉스 교체를 추진한 내부 세력들에 의해 이사회 보고서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면서 KB 사태가 시작됐다.


이후 유닉스 전환을 주도했던 KB 지주와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은행장과 대립했고, 결국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이 모두 퇴진하고 사외이사들까지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는 사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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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은 금융당국의 제재가 확정되기 전까지 시스템 전환 작업을 미뤄왔다. 당국의 검사가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은행 사외이사들은 유닉스 업체들의 경쟁자인 IBM을 시장지배적지위남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이건호 전 행장 측과 철저한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국의 검사에서 유닉스 시스템 전환 과정에 실제로 보고서 조작 등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관련 임직원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검찰 역시 이 과정 전반에 관한 수사에 착수했다.

국민은행은 이에 따라 박지우 부행장(은행장 직무대행) 주도로 주전산기 전환 작업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내년 7월이면 IBM과의 계약기간이 끝나며 추가 단기연장계약을 체결할 경우 3개월 기준으로 월 9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현재 주전산기의 한 달 사용료가 28억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3배 정도 많은 위약금의 형태다.

국민은행이 기존대로 유닉스 전환을 계속해서 추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해도 전환 작업에는 최소 1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수백억원 규모의 위약금 지급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은행 내부는 주전산기 교체가 원점에서 재검토된다는 소식에 허무함과 격앙됨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최초에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이 이 문제에 대한 이 전 행장의 보고를 정식으로 받고 내부에서 재논의만 했어도 끝날 사항이었는데 KB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까지 사태가 커졌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수뇌부의 감정 싸움으로 지난 4개월간 KB의 브랜드는 밑바닥까지 떨어졌는데 결국은 주전산기 원점 재검토에 위약금까지 물게 생겼으니 허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도 사태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은행 사외이사들은 당국으로부터 '억울한 징계'를 받았다고 밝히며 책임을 끝내 회피하고 있다.

한편 임영록 전 회장은 이날 내놓은 성명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자 한다.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제 부덕의 소치로 생각하고 앞으로 충분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 KB금융그룹이 새로운 경영진의 선임으로 조속히 안정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KB금융 회추위는 100여명의 전체 후보군을 확정한 뒤 다음달 2일 열리는 회추위 3차 회의에서 10여명의 1차 후보군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후 압축된 후보군 10명에 대해 평판조회를 실시한 뒤 4명 내외의 2차 압축 후보군을 확정, 10월 하순께 최종 회장후보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이사들은 지난 26일 차기 회장 선출 방식에 대해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사회는 회장과 행장을 분리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지만 당국은 '임영록 트라우마'를 제거하려면 겸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각에서 '선 겸임, 정상화 후 분리론'도 나오고 있지만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도리어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겸임을 하려면 낙하산 시비를 막기 위해 내부 출신에서 골라야 하는데 그만한 중량감 있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 한계다. '회장-외부, 행장-내부' 방안이 여전히 유효한 카드인 이유다.

이런 가운데 제2의 KB 사태를 막기 위한 금융감독원의 후속 작업도 빨라지고 있다. 금감원은 제재심의위원회의 공정성을 높이고자 회의록 전체를 공개하는 한편 위원 구성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심 절차를 앞당기는 방안도 강구된다. 금감원은 다음달 중순 제재심 운영개선안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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