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여러 면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봐도 한국은 아시아에서 펼쳐질 매년 7,3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시장에 적극 참여할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대북사업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이다. 북한은 AIIB 비회원국이지만 인프라 개발 관련 투자는 받을 수 있다. 개성공단을 비롯해 현재 직접 진행하고 있는 대북사업과 동시에 국제기구인 AIIB를 통해 간접적으로 대북사업에 참여할 경우 국내의 정치적 리스크를 낮추고 북한을 관리하기도 수월해질 것이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올해 말께 출범할 예정인 AIIB에서 우리 입지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입협상 과정에서 AIIB의 주요 의사결정을 경영진이 아닌 이사회가 하도록 중국을 설득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경영진이 할 경우 누가 총재가 되느냐에 따라 중국의 입김이 세질 수 있지만 이사회가 맡게 되면 지분율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사회는 상임이사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투자 프로젝트를 다루는 사무국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지분율 확대 역시 AIIB 내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관건이다. 지분율 결정의 주요 요소로 거론되는 국내총생산(GDP)으로 보면 우리는 역내에서 중국과 인도에 이어 3위다. 정부는 "여러 요소를 감안해야 돼 지분율이 세 번째가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외환보유액 등 우리에게 유리한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 지분율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이번 AIIB 가입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한반도 배치와 맞물려 미국과 중국에 끼여 가입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미국과 중국은 지금 경제뿐 아니라 정치·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등을 내세워 관련국에 가입을 종용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중국 역시 '신(新)실크로드 프로젝트' 등을 통해 새로운 경제권역 건설에 나서고 있다. AIIB만 해도 사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대표되는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질서에 대항하는 성격이 크다. 두 강국이 밀어붙이고 있는 경제 블록화와 패권다툼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AIIB가 지역주의에 머물지 않도록 한국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