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는 정부가 선물환포지션한도를 낮추고 최근 들어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대세 하락장을 정부가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기획재정부가 선물환포지션한도 강화조치를 꺼낸 것도 정부가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시장에 보여줘 하락속도를 늦추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많다.
시중은행의 고위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정부가 큰 실효성을 기대했다기보다는 나름대로 명분을 쌓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시장을 놓고 보면 원화강세라는 대세를 막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포지션한도를 줄인 게 금융사들에 직접적인 타격이 되지 못한다는 점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일부 외국계은행은 한도를 줄이면서 영업에 지장을 받겠지만 결정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한도강화 기준(외은지점 150%, 국내은행 30%)으로 봤을 때 현재 이를 넘는 곳은 10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은 지점 여러 곳과 국내은행 일부가 한도를 초과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도 정부는 유예기간을 줬다. 이번 조치는 다음달부터 시행되지만 실제 적용은 내년 1월1일부터다. 그때까지 초과분을 해소하면 된다. 정부에서는 유예기간 동안 해당 금융사들이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뒤집어 보면 강력한 조치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도 축소폭을 시장의 기대에 맞추는 수준에서 정했다”며 “다른 대안도 있기 때문에 조금 여지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외환당국이 원화 하락속도가 더 빨라지면 추가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도 이날 조치가 ‘1단계 대응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에 내년에도 원화강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금융센터도 27일 내년에 국제 금융시장의 위험 회피 성향으로 한국 원화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추가로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은행의 비예금성 외화부채(전체 외화부채-외화예수금)에 부과하는 외환건전성부담금의 요율인상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은행의 외화차입(부채)을 막아 건전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현재 부채 만기에 따라 ▦1년 이하 20bp(1bp=0.01%포인트) ▦1~3년 10bp ▦3~5년 5bp ▦5년 초과 2bp로 돼 있다. 법정 최고한도가 50bp로 돼 있어 추가로 인상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다만 요율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행령을 개정해야 하는데 재정부는 지금으로서는 개정작업을 추진하는 게 없다는 입장이다.
재정부는 외환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토빈세 도입에 준하는 초강수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물론 아직은“토빈세 도입이 어렵다“는 게 재정부의 공식 입장이기는 하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국회 차원에서 토빈세가 거론되고 있어 입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의되지 않겠느냐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토빈세는 아니더라도 정부가 비슷한 형태의 외환규제 장치를 만들 가능성도 거론된다. 최종구 재정부 차관보는 지난 22일 “말 그대로의 토빈세는 채택이 어렵고 어떤 형태의 자본유출입 완화장치 같은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토빈세보다는 국내외 투자자에게 차별 없이 적용할 수 있는 채권거래세가 대안이라는 말도 나온다. 외환시장의 투기성 논란이 많다는 점에서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을 추가로 규제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