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사내 유보금 논란] 전세계 법인세 인하 추세에도 역행… 기업 탈한국 부추길 듯

법인세 부담 많은 美 기업처럼<br>파격 세제혜택·싼임금 찾아 국내기업 해외탈출 가속 예상

11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최대 의약품 판매업체인 월그린의 경영진은 최근 본사를 스위스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월그린은 이미 2012년 스위스에 본사를 둔 영국 제약회사 얼라이언스부츠의 지분 45%를 사들였다. 또 내년 8월이면 나머지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옵션도 갖고 있다.

100년 넘게 미국에서 성장해온 기업이 갑작스레 본사를 스위스로 옮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막대한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미국의 법인세율은 최고 39.1%에 달하지만 스위스는 지방세를 포함한 각종 세 부담이 17.9%에 불과하다. 유럽 내 다른 국가들의 법인세율도 평균 21%로 미국의 절반에 가깝다.


미국은 또 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의 법인세와 함께 해외에서 거둬들인 수익에도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까다로운 규정이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미국에서는 인수합병(M&A) 등의 방식을 통해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제약회사 애브비는 영국의 동종기업 샤이어를 536억달러에 흡수해 본사를 옮길 계획이며 제약사 밀란도 애브비의 옛 모기업의 해외 사업부를 인수해 네덜란드로 이전할 방침이다. 또 최근에는 제약업계 외에도 글로벌 보험사인 에이온, 케이블TV 기업 리버티글로벌, 농업 및 건축 장비업체 CNH글로벌 등 최소 7개 기업이 영국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세금을 피해 하나둘 해외로 탈출하는 '엑소더스'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미국 정치권과 산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 의회는 기업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본사를 외국으로 이전하려는 기업의 최소 외국인 지분율 요건을 현 20%에서 50%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의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이 현재 진행 중인 절세용 M&A를 중단하면 향후 10년간 194억6,000만달러의 세수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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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같은 미국 기업의 엑소더스가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각종 세제혜택을 비롯한 더 나은 여건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베트남 박닝성 인근에 10억달러를 투자해 디스플레이 모듈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현지의 값싼 인건비, 지리적 요건 등과 더불어 베트남 정부의 파격적인 세제혜택과 지원이 한몫을 했다. 베트남 지방정부는 옌퐁공단에 삼성디스플레이의 투자 유치를 위해 인력 훈련비와 토지사용료 등을 포함한 약 3,000억동(1,416만달러) 규모의 지원책을 제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 삼성디스플레이는 첫 4년간 법인세를 전액 면제 받고 이후 9년간은 50% 감면 혜택을 적용 받는다.

이에 앞선 2009년 베트남 박닝성에 휴대폰 공장을 설립한 삼성전자 베트남 생산법인은 4년간 법인세 전액을 면제받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약 5,000만 달러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타이응우옌성에도 휴대폰 2공장을 완공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휴대폰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삼성전자는 호치민에 2017년까지 10억달러를 투자해 초대형 가전공장도 설립할 계획이며 삼성전기는 12억달러를 들여 베트남 현지에 휴대폰 부품공장을 짓고 있다.

자동차 업계 역시 최근 들어 앞다퉈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중국 충칭에 중국 내 4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며 기아자동차는 멕시코에 해외 6번째 공장을 만들기로 확정했다. 이들 공장이 본격 가동하면 현대·기아차의 해외생산 비중은 현재 54%에서 60% 가까이로 올라가게 된다. 타이어 업계도 최근 잇따라 미국과 체코 등지에 해외공장 건립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법인세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사내유보금 과세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기업들의 엑소더스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내수확대를 위한 사내유보 과세는 결국 추가적인 법인세 증가 효과를 불러일으켜 장기적으로 오히려 투자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전세계적인 법인세 인하 추세와도 맞물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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