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망각이 미덕인가

사실 우리가 과거의 모든 것을 기억할 경우 머리가 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지금 순간에 일어나는 일도 기억하지 못하면 아마 자신에 대한 존재도 허물어질 것이다. 망각이 미덕이 되지만 극단적인 망각은 자기존재를 부정하게 된다.IMF외환위기가 극에 달하던 작년초. 불과 몇달만에 금모으기운동에 호응해 225톤의 금을 모은 장한 민족임에 우리는 강한 자긍심을 느꼈다. 그러나 설연휴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김포공항에 밀려든 인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망각하는 국민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IMF관리체제에 들어갈 당시 백화점에서 주부들이 설탕·라면·분유를 비롯한 생필품을 싹쓸이 하던 광경을 기억할 것이다. 달러가 바닥이 나고 국내 굴지의 기업마저 신용이 떨어져 외국으로부터 들여와야 할 원자재수입이 막혀 공장이 돌아가지 않고 가축이 굶어죽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국내 거래은행은 BIS 8%기준을 지켜야 할 절박한 사정이라 수입신용장을 개설해주지 않고 외국거래선도 평소 무역관행인 6개월 외상(USANCE)을 연리 20%의 이자를 준다해도 기피한 채 현금결제만을 요구하니 원자재 수입은 속수무책이었다. 조달청도 알루미늄·화학펄프·생고무 등 생필품과 원자재의 대량 긴급수입에 나섰으며 6개월내에 환율이 안정될 것이란 믿음으로 그 전례가 없는 유산스 방식에 의한 원자재 수입을 결정했다. 새정부 출범 1년을 맞으면서 그 악몽같은 경제환란의 위기에서 우리 국민이 모두 힘을 합쳐서 벗어났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할 뿐이다. 그러나 오히려 너무나 빨리 위기를 탈출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고 있지만 두번째 국난인 IMF 경제난국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날의 신문을 다시 들춰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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