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절판된 캐서린 그레이엄 자서전

워싱턴 포스트는 60년대까지만 해도 워싱턴에서도 두세번째였던 일개 지역신문에 불과했다. 이 신문을 오늘날 뉴욕타임스와 맞먹는 영향력을 갖춘 미국의 권위지중 하나로 끌어올린 주역이 바로 워싱턴 포스트의 전(前)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집중 추적한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그들을 지휘한 빌 브래들리 편집국장 등 수많은 훌륭한 기자들이 워싱턴 포스트의 오늘이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인수한 신문을 63년에 물려받아 당대의 명기자들이 소신껏 권위있는 신문을 만들 수 있도록 최상의 여건을 조성한 지휘자 그레이엄 여사야말로 워싱턴 포스트의 산모(産母)라는게 언론학계의 평가다.「기자」라는 직종에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한 시선이 집중되고 「20세기말 한국의 기자」로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는 상황이 캐서린 그레이엄의 자서전을 떠올리게 만든다. 97년2월 출간된 여사의 자서전 「퍼스널 히스토리」는 어린 시절부터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을 맡아 미국내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의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서술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여사의 자서전중 특히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시절 얘기였다. 71년 경쟁지인 뉴욕타임스가 먼저 입수해 보도하다가 행정부로부터 보도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았던 「미 국방부 기밀문서」를 뒤늦게 구했지만 이를 과감히 게재해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한층 강화시킨 일, 워터게이트사건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방송허가가 유보되는 등 정부의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밀어부치던 상황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여사는 또 대통령선거때마다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던 후보가 있었지만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가 자신의 성향에 영향받지 않도록 노력하던 일들을 담담하게 적어놓고 있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여사가 직접 참여해 만들었던 제3세계관련 보고서를 경쟁지인 뉴욕 타임스가 1면에 커다랗게 다룬 반면 자신의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는 이를 깔아뭉개고 조그맣게 취급했는데도 여사는 혼자서만 분통을 터트렸을뿐 당시 브래들리 편집국장에게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했던 일이다. 편집국장이 나중에 사과를 했다지만 우리와는 너무 동떨어진 일이어서 기억에 새롭다. 그레이엄 여사의 자서전은 미국 출간직후인 97년3월에 중앙일보에 의해 번역, 출간됐다. 그런데 번역판은 현재 절판(絶版)돼 서점에서 찾아볼 수 번역판의 절판으로 여사의 언론정신이 한국에 제대로 전파되지 않은 탓인지 작금의 언론상황에 고개를 들 수 없다. 李世正 국제부 차장BOB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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