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공간에 15명이… 끔찍한 휴가의 기억
[이슈 인사이드] 눈쌀 찌푸리는 휴가철 바가지 요금 언제까지…처벌 규정 없어 하루 방값 30만원·음식 값 3배까지 치솟아표기 없는 성수기 요금 들쭉날쭉… 사전신고제는 동참 안해 유명무실여행사·숙박업계도 특별 약관 꼼수… 예약 취소땐 위약금 폭탄 환불 없어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경기 이천에서 27일부터 3일간 열린 한 락페스티벌에 참석한 대학생 이 모(24)씨. 좋아하는 밴드를 직접 볼 수 있어 행복했지만 그 곳에서 겪은 바가지 요금과 상술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이 씨는 "하루 5만원 받던 방을 축제 기간 동안은 하루 25~30만원까지 올려 받는데다 3박4일이 아닌 1박2일만 이용하겠다고 하면 아예 방을 빌려주지도 않는다"며 "그나마 5~6명이 자도 모자랄 공간에 10~15명이 끼어 자게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물가도 만만치 않았다. 이 씨는 "외부 음식 반입이 금지돼 안에서 파는 음식을 사먹어야하는데 2,000~3,000원도 안 할 것 같은 음식을 2~3배 가격으로 팔고 있다"며 "축제 기간에는 온 동네 주민들이 자신의 집이나 가게를 하루 주차비 2만원의 주차장으로 변신시키는데 그것도 웃긴 일"이라며 혀를 찼다.
일년 간 손꼽아 기다린 여름 휴가철이 돌아 왔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해외로 떠날 생각에 한껏 부풀어 보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성수기 요금'을 만나는 순간 유쾌한 기분은 싹 사라진다. 피서지의 높은 물가, 상인들과의 실랑이 등으로 끔찍하기만 했던 지난 여름 휴가의 기억도 떠오른다. 여름철 즐거운 여행 한 번 떠나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비수기는 5만원, 성수기는 "전화 요망"="성수기 요금이 왜 비싸냐고요? 이용하고 싶은 사람은 넘쳐 나는데 자리는 모자라니 비싸지는 게 당연한 이치죠"
여행업계 및 관광업계, 상인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물론이다.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이 한정돼 있다면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를 정말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비싼 가격이 아닌 업자들의 꼼수다.
충남 보령에서 열린 머드축제에 다녀온 김 모(38)씨는 숙박업소 예약에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예약을 위해 홈페이지를 방문해봐도 비수기 요금은 나와 있는데 성수기 요금은 대부분 표기돼 있지 않아 일일이 전화를 걸어봐야 했던 것.
김 씨는 "전화를 해보면 대부분 1박에 20만~30만원이라는 호텔 값 뺨치는 가격을 부르곤 했다"며 "그나마 가격이 저렴하게 적힌 곳을 겨우 찾아 연락해보면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둥 방이 다 찼다는 둥 예약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휴가철은 아니지만 수요가 많이 몰리는 축제 시즌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부산에 사는 직장인 박 모(32)씨는 매년 10월 불꽃축제 시즌이 오면 인근 상인들의 장삿속에 치가 떨린다.
그는 "언젠가부터 바닷가에 자리잡은 커피숍과 식당에서 불꽃축제날 1명에 3만원, 4명 한 테이블에 10만원이라는 식으로 자릿세를 받기 시작했다. 좋은 자리에서 편하게 보니깐 돈을 내는 거라지만, 축제는 부산시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건데 이익은 왜 커피숍이나 식당이 다 챙기는 건지 모르겠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문제는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보령군 지역경제과 한 관계자는 "숙박업 영업자가 성수기 숙박요금을 얼마 받을 건지 미리 신고하고 요금표를 부착해 부당 요금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사전신고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위반하더라도 규제나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며 "아무리 지자체가 감시ㆍ감독을 강화한다고 해도 상인ㆍ업주들의 자발적 동참이 없다면 바가지 요금 근절은 힘들다"고 말했다.
◇"취소해도 환불은 안됩니다"=미리미리 준비하면 왠 만한 성수기 바가지 요금을 피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름철마다 대부분의 여행사ㆍ숙박업계가 내거는 '성수기 특약(특별약관)'은 일찌감치 휴가 준비에 나선 꼼꼼한 소비자들까지 좌절하게 만든다. 당초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는 계약 취소 시 ▦여행 개시 20일 전 통보하면 계약금 전액 환불 ▦여행 당일 통보시 여행요금의 50% 배상 등의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이 있다. 업계가 이 규정을 피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특약'이다.
올해 휴가도 해외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은 직장인 정 모(31)씨는 지난 5월 이탈리아 8월 출발 여행상품이 나오자 마자 재빨리 예약해뒀다. 성수기가 다가올 수록 원하는 여행상품을 구하기가 힘들어지는데다 가격도 몇 배나 치솟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 뒤 급작스런 사고로 무릎을 수술한 정 씨는 미리 예약해 둔 것을 크게 후회했다. 특약 상 여행을 취소한다고 해도 지불한 돈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 씨는"출발까지 두 달이나 남아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구할 수도 있을 텐데 환불 불가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하소연해봤지만 여행사 측은 "환불은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정 씨 사례처럼 계약 취소 시 위약금에 대해 서면으로 별도의 특약을 맺은 경우에는 계약 내용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즉 특약에서 정한 위약금이 분쟁해결 기준보다 많아도 만약 소비자가 동의했다면 특약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특약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여행사의 논리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다. S여행사 한 관계자는 "비수기 때는 항공권의 이름 변경이 가능하지만 성수기 때는 안 되는 경우도 많기에 우리도 엄청난 수수료를 지불하고 취소한다"며 "현지 숙박업소도 높은 위약금을 내거는 곳이 많기에 환불 규정을 엄격하게 하는 성수기 특약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항상 정도의 지나침에 있다. 전문가들은 상식 밖의 특약을 강요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분명히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팀 관계자는 "3개월 전에 취소하는데도 전액 환불 금지 조항을 덧붙인다거나 비수기인데도 특약을 강요하는 식으로 특약을 남발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재조정해볼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