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가 빚을 채 갚지 못하고 숨졌을 때 `사망후 3개월 내에 상속포기신고를 해야 채무 변제의무가 없어진다'는 민법 규정을 부모가 아닌 손자ㆍ손녀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5부(강 현 부장판사)는 4일 채권처리업체가 "할아버지의빚을 대신 갚을 의무가 있다"며 숨진 김모씨의 손자ㆍ손녀를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법률을 잘 몰라 상속인이 됐음을 알지 못했다면 그 때까지 상속포기신고 기간이 연장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조부가 진 빚에 대한 상속을 부모가 포기했더라도 차순위 상속권자인 손자ㆍ손녀가 법률을 잘 몰랐다는 이유로 상속포기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회피할수 없다는 기존 하급심 판결을 깬 것으로 대법원 판결이 주목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민법에 규정된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은 상속인이 재산의 유무 등을 파악한 후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신고 여부를 결정할 기간을 주자는의미"라며 "손자ㆍ손녀는 상속인이 됐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면 그 때로부터 3개월이내에 상속포기신고를 하면 빚을 떠안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부모가 상속을 포기했을 때 조부모의 빚이 손자ㆍ손녀에게 떠넘겨진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이 알기 어렵고 부모는 상속에 따른 법률문제를 모두 차단하겠다는 의도에서 상속포기신고를 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망 후 3개월 내에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신고를 해야 한다는 법규가 손자ㆍ손녀에까지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1991∼96년 모 은행에서 모두 4천700만원을 대출받았지만 이를 다 갚지못한 채 2000년 5월 숨졌고 김씨 자녀들은 3개월 내에 상속포기신고를 했지만 손자ㆍ손녀는 채권처리업체로부터 채무 변제의무가 있음을 통보받은 후 상속포기신고를마쳤다.
(서울=연합뉴스) 심규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