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XG를 첫 대면했을 때의 그 두근거림을 나는 아직도 즐거운 기억으로 곱게 간직하고 있다. 우선 디자인부터가 신선했다.국회의원이나 회장님 차로 통하던 기존 그랜저의 점잖던 모습을 과감히 던져버렸다. 외형과 크기로 자동차의 성능을 평가하고 경제를 분석하던 시대를 비웃든 그랜저XG는 실속있는 차로 변해 있었다.
두툼한 차체와 치밀한 마무리, 백미(白眉)인 뒷모습. 외국차보다 더 이국적인 모습에 시선을 멈춘 행인들이 룸미러속에 들어올 때 왠지 우쭐한 마음이 든 기억도 난다.
XG는 디자인 못지 않게 뛰어난 성능으로 답해왔다. 방음벽이 설치된 연주회장처럼 조용한 실내에 들어서면 각종 기계장치들이 장미목 무늬 정장차림으로 나를 맞는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된 것만 같다.
감싸 안긴 듯한 아늑함 속에서 소리없이 다가오는 엔진의 힘이 전해지자 절로 탄성이 나왔다. 가벼운 발놀림에도 섬세한 반응을 보이며 달리기 시작한 XG는 미끄러지듯 질주하다가 어느 순간 날아오를 것만 같다. 특히 국내 최초로 장착됐다는 듀얼게이트 자동변속기는 여성스러움과 남성다운 주행능력을 공유하고 있어 운전의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구석구석에 숨겨놓은 보물찾기를 하듯 그랜저XG의 기능을 하나하나 찾아 낼때마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한세기를 마감하는 시기에 이런 차를 만났다는 게 행운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등장할 것이라는 다음 세기를 앞둔 금세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자동차는 만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