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쌀 관세화가 유리할 수 있다면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쌀 협상 등의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도하개발어젠다(DDA)농업분야 세부원칙의 기본 틀 초안이 제시됐다. 한마디로 높은 관세의 농산품목에 대한 대폭적인 관세감축을 실시하되 농산물 수입국들이 반대해온 관세상한 설정은 추후에 논의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도국 지위를 부여 받으면 수입증량 의무를 면제 받는 특별품목 등을 둘 수 있으나 나머지 품목에 대해서는 반드시 수입해야 하는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의 확대가 불가피할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쌀 협상의 경우 관세화 유예를 기본입장으로 하되 상대국의 요구가 과도하면 관세화 전환도 검토할 수 있다는 유동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기본 틀 초안에서조차 관세상한 설정 문제가 불분명한 만큼 당장 우리 정부가 입장을 정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국내쌀값 수준이 수입가의 4배에 육박하고 있으므로 관세상한이 400% 이상일 경우 관세화 유예의 실리가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섣부른 관세화 유예를 택하느니 차라리 관세화 전환이 유리할 수도 있다. 쌀 소비량이 갈수록 줄어들어 재고관리 비용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MMA물량으로 쌀 소비량의 4%인 20만5,000톤을 수입해 지난해 3,400억원의 관리비용을 지출했는데 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2006년 이후 수입물량이 30만~60만톤으로 늘어날 경우 재고관리비용도 급증할 것이다. 일본과 타이완이 쌀 관세화를 유예하고 MMA물량을 8%까지 늘리기로 했다가 폭증하는 재고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99년과 2003년에 각각 관세화를 받아들였던 전례는 참고할 만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쌀 협상과 미곡산업 구조조정 방안’에서 쌀의 관세화를 권고한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KDI는 지난 연말 이후 국제 쌀값이 상승하기 시작해 2013년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곁들이고 있다. 다만 관세화 전환을 선택하더라도 250% 이상의 고율관세를 물리는 농산물이 마늘ㆍ참깨ㆍ고추 등 108개 품목이나 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쌀 협상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추후 결정될 관세상한 방식이 기타 농산물에 미칠 영향도 면밀하게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진행될 DDA농산물 협상에서 개도국지위 확보 등 개방축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농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제고만이 우리 농촌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119조원의 농업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10여년 동안 62조원을 퍼붓고도 25조원의 농가부채를 남겼을 뿐인 농업정책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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