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포장] 박도재(박 침술원 원장·77세)6세때 각막염으로 실명했다. 서울맹학교를 졸업한 후 정상적인 사람도 어려운 일본 유학의 길을 과감히 선택했다. 박원장의 이러한 결단은 선진교육을 받아 같은 처지에 있는 국내 시각장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함이었다.
일본에서 침술공부를 한 박원장은 귀국과 동시에 강원도 춘천에서 침술원을 개원, 유학시절 갈고 닦은 인술을 펼쳤다. 물론, 시각장애인들에게 침술과 안마에 대한 기회교육을 수시로 마련했다. 이러한 노력끝에 46년 안마와 침술 자격증 시험에 도전해 침구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50년 6.25와 함께 대구에 정착한 박원장은 68년 경북지역 안마사협회를 결성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인이 관청을 드나드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부인과 자녀까지 동원, 보건복지부를 방문해 결국 협회설립 승인을 받는데 성공했다. 서울을 수십차례 오르내린 결과였다.
그후 경북지역안마사협회 설립만으로 활동의 영역이 좁다고 판단해 전국의 시각장애인을 규합, 70년에는 대한안마사협회를 설립했다. 그는 협회를 설립한 후에도 사무실을 마련하지 못해 자신의 집을 협회사무실로 이용하면서 안마사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앞장섰다.
단체결성 뿐만 아니라 교육을 소홀하게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평균 10여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를 가르쳤다. 또 예전의 안마업이 집집마다 돌며 피리를 불며 호객행위를 한 것이 오히려 시각장애인에 대해 편견를 초래한다고 판단, 62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안마원을 개설했다.
대한안마사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그는 더 이상의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사임한 뒤 자신의 안마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시각장애 성인들의 취업알선에 열을 올리는 등 다른 사람을 위한 사회봉사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박상영 기자 SA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