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시중은행장은 은행 점포 축소의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은행이 벌어들이는 이익이 줄어든 만큼 점포 수를 줄여서라도 수익성 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은행은 연말까지 전체 점포의 5%가량을 폐쇄할 계획이다.
금융권 전반에 구조조정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수익성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금융사가 인건비용 절감을 검토하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수익 악화를 타개할 자구책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금융회사들로서는 금융당국으로부터 구조조정의 명분을 얻은 셈이지만 금융사들로선 대규모 감원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 있다.
특히 금융권 임금단체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고용자와 피고용자 간 기세싸움은 한층 고조되는 모양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임금협상에 임하는 양측 간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올해 하투(夏鬪ㆍ여름투쟁)는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자"에 몰두하는 금융사=금융사들이 벌이는 '비용과의 전쟁'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연봉의 일부를 자진 반납기로 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김 회장은 금융사의 수익 부진이 심화하는데도 은행원들이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연봉 반납이란 예상 밖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일부 고위직 임원의 연봉 반납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위해선 비용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금융사 특성상 전체 비용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5~70%에 달한다. 나머지는 전산(20~25%), 일반관리(5~10%)가 차지하는데 두 항목은 고정비용 성격이 강해 감축이 어렵다. 쉽게 말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선 유일한 항목인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자구책을 마련하라고 하지만 인건비 말고는 손댈 곳이 없다고 보면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피고용자 측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어 사용자 측의 고심이 크다"고 토로했다.
◇구조조정 몰고 오나=이런 상황은 영업 점포 축소를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고 있다.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9일 경영진과 올해 상반기 실적을 점검하면서 '부실 점포 정리'를 언급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적자 점포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3월 말 현재 국내에 개설된 영업 점포 수는 6,729개로 지난해 12월 말에 비해 28개 줄었다. 은행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영업 점포를 더욱 축소해나갈 방침이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이 올해 20개 점포를 통폐합하며 하나은행은 하반기에 22개 점포를 정리한다.
계획대로 영업 점포가 잇따라 축소되면 구조조정의 불씨가 지펴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적으로 은행은 한 점포당 10명 내외의 인력을 운영하는데 대다수 점포는 이미 필요 인력이 꽉 찬 상황이어서 신규 인력을 받기가 쉽지 않다. 이들을 본점에 배치해 탄력적인 인력 운영에 나설 수 있지만 오히려 은행들은 본점 슬림화를 진행하면서 매 정기인사 때마다 수백명의 본점 인력을 영업 점포로 내려 보내고 있다.
또 다른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노조가 원하는 수준의 임금 인상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피고용자 측에서 비용 절감 노력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대 수천명의 은행원들이 창구를 떠나야 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