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새로운 먹거리’, ‘신성장동력’ 이야기를 합니다. 특히 IT 분야가 그렇습니다. 중국, 인도 등 후발주자들이 저비용 고효율 생산 체제를 갖추며 스마트폰, PC 등 다양한 제품에서 선진 기업을 추격하면서 사실상 우리 기업들의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 옵니다. IBM이나 구글과 같은 대기업들은 이미 ‘모바일 이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헬스케어, 금융 등 전통 IT 산업에서는 다루지 않던 분야의 서비스도 기기 안의 맥락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 역시 활발한 편입니다.
이런 노력의 핵심 기저에는 ‘Internet of Things’, 즉 사물인터넷이라는 개념이 포함돼 있습니다. 기기 간 통신(M2M), 사물통신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1999년 캐빈 애쉬턴 벨킨 컨서브 사장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기존에는 좀처럼 연동되지 않던 이종의 기기들이 서로 소통하고 연계되면서 사용자의 관심과 목적에 맞는 서비스 구현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실제로 기기들끼리 서로 호환되고 정보와 콘텐츠를 주고받을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한꺼번에 여러 시스템과 서비스를 쓰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LG전자나 밀레 같은 대기업들은 이미 스마트홈 서비스를 IoT 기반 글로벌 경쟁의 전초전이 될만한 분야로 가정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IoT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맞춤화(Customization)와 상시접속성(Ubiquity)입니다. 그러나 사용자 관점에서 봤을 때 문제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한 가지 기기로 여러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초연결(Hyper-connectivity)‘ 상황에서 개인 정보나 데이터가 노출되기 쉽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빅 데이터’ 관련 논의가 업계에서 화두가 될 때에도 종종 지적되었던 사안이지만 인프라를 관리하는 대기업이나 정부가 모든 사용자의 정보를 쥐고 ‘빅 브라더’(Big Brother)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게다가 기기 간 연동의 범위만 늘렸지 사실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리모컨 대신 모바일 폰으로 TV를 콘트롤하거나 냉장고나 전기밥솥 등이 주변의 온도, 습도를 인식하는 기술 등은 오래전부터 다른 용어로 소개된 것들입니다. ‘유비쿼터스 서비스’(Ubiquitous service)나 ‘스마트 시티’(Smart city) 같은 개념으로 말이죠. IT 업계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위해 실질적으로 달라진 바 없는 내용을 계속 새롭게 포장해서 내놓는다는 뼈아픈 비판도 있습니다. 한 업계 전문가는 기존의 패러다임과 기술적으로 다른 게 있다면 ‘스마트 워치’(Smart Watch) 정도라고 분석하며 사실상 발상 면에서는 커다란 진보가 없는 상태에서 ‘IoT 관련주가 뜬다’ ‘앞으로 정보기술 산업의 차세대 먹거리가 될 것이다’ 라는 담론만 펼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故) 스티브 잡스가 약 20년 전 대중들 앞에서 강연한 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잡스는 ‘애플은 어떤 브랜드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코카콜라, 나이키 등은 제품 그 자체의 기능도 있지만 ‘맛있다’ ‘산뜻하다’ ‘쿨하다’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가 연상된다고 말합니다. 반면 당시 애플은 다른 기업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브랜드 가치에는 놀랄 만큼 소홀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가 경영 부진을 이유로 쫓겨나 있을 무렵 PC 제품의 성공공식만 반복하다 실패한 애플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것입니다. 되레 ‘기술은 언제든 변화하는 것,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기술 자체의 최신성에서 먹거리를 찾지 말고 소비자의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에 눈이 휘둥그레진 오늘날 IT 산업 전문가들이 반성해야 될 대목입니다. 그가 IoT 트렌드를 봤다면 ‘한 소리’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30년 전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남긴 말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하직원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업의 본질을 보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트렌드,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데이터나 동향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해당 분야에서 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 원인과 구조를 분석해 보라는 것이죠.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Value)를 되돌려 줄까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블루오션 전략으로 유명한 김위찬 인시아드(Insead) 교수는 우리가 당장 돈 되는 아이템, 수익이 나는 제품으로 성과를 올리는 가치 포획(Value capturing)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남들이 생각지 못한 사업 모델로 고객에게 ‘선물’을 제공하는 가치 창출(Value Creation)에는 무심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IoT가 사용자가 예상치 못한 장점을 갖춘 선물이 되기 위해 많은 산을 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그러자면 부단히 사용자의 일상을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기술뿐만 아니라 문화를 봐야 합니다. 국내 어느 기업은 사용자 경험을 중시한다고 홍보하면서도 정작 모바일 폰의 최종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은 일반 제조업 출신 임원이라는 뒷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어쩌면 IoT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재단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본질을 꿰뚫은 인문학적 상상력은 사람을 뽑을 때에만 필요한 게 아닐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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