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서 글을 읽는다. 인류 최초의 글인 상형문자가 사물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졌듯이 문자와 회화는 의사소통이라는 영역에서 서로를 고양시키는 불가분의 관계. 이런 점에서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어울려 그림속의 문자를 읽어내는 전시회가 마련돼 주목을 끈다.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에서는 26일부터 2월 17일까지 시서화삼절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던 우리 전통미술과 문자를 조형적 기호로 파악하고 심미성을 얻어낸 현대미술의 성과물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한다.
이응노, 남관, 김창렬, 오수환등 4명의 현대작가 작품 20점과 문자도 및 서예병풍, 책거리 그림과 청자·백자·공예품등 전통미술 60여점이 선보인다.
우리 선조들은 「시서화삼절」이라 하여 시와 문자 그리고 그림을 함께 아우르는 것을 큰 미덕으로 삼았다. 문자를 하나의 시각 이미지로 이해하고 그 조형성을 추구했던 탓이었다. 선조들은 그림을 그린 후 시문을 써넣어 그림과 문자를 조형적으로 융합하는 멋을 즐겨온 것이다.
또 갑골문자의 추상적인 조형성을 독창적인 영역으로 인정하여 서예를 발전시켰고, 도자기를 비롯한 각종 공예품에 수자나 희, 복등의 글자를 넣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 현대미술에 문자가 중요한 조형언어로 자리잡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이같은 전통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이응노는 수묵채색화로 다져진 한국적 조형어법과 정서를 바탕으로 서양의 실험적 미술조류를 소화함으로써 동도서기를 구현한 작가. 한문의 상형문자 이미지나 한글의 자모를 추상적으로 변용한 작품을 선보였던 이응노의 회화세계는 그대로 보편적인 세계성을 획득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관 역시 상형문자를 연상시키는 기호들과 형상들로 화면을 구성하고, 화려한 색채와 반짝이는 빛을 더하여 심미적인 조형세계를 추구했다.
실제보다 더 실감나는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렬은 천자문에세 따온 한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서예적 필치를 무기삼은 오수환은 그림과 문자가 분리되지 않은 기호적 형상이 화면에 표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