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망을 피해 택배영업을 하는 무허가 자가용 화물차를 합법화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배'자 번호판 증차 방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전체 불법 자가용 화물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000여대만을 증차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택배업계는 "해외 직접구매나 모바일쇼핑 증가 여파로 급증하고 있는 택배물량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자칫 차량 부족에 따른 택배 대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1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4일 공급심의위원회를 열고 배자 번호판을 증차하기로 결정했다. 화물운수법상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자가용 화물차에 배자 번호판을 부여해 합법화한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국토교통부는 한국교통연구원으로부터 오는 7월까지 연구용역 결과를 받아 증차 대수나 방식을 연내 확정할 예정이다. 현재 증차 대수는 6,000대 이하, 방식은 개인 차주에게 배자 번호판을 부여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택배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증차 대수를 6,000대로 정한 배경에는 택배차량 한 대당 하루 12시간 기준으로 200~210개의 상품을 처리한다는 전제지만 이는 설이나 추석 등 성수기 기준일 뿐"이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국토부가 배자 번호판 증차를 결정하기는 이번이 두 번째로 앞서 지난해 초 불법으로 영업 중이던 자가용 화물차 1만1,500대에 배자 번호판을 부여한 바 있다. 화물운수법에서는 노란색(영업용) 번호판을 발급받지 못한 자가용 화물차가 돈을 받고 화물운송을 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택배업계는 전체 3만5,000대 택배차량 가운데 1만2,000~1만3,000대가 불법 자가용 화물차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국토부가 추진 중인 배자 번호판 증차가 자칫 택배시장 생태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노란색 번호판 없이 택배영업에 나서고 있는 자가용 화물차 가운데 절반 정도만 배자 번호판을 얻을 경우 나머지는 내년부터 시행하는 카파라치제도 등으로 택배업무 자체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무허가 택배차량이 적발되면 택배기사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6개월 이내의 운행정지 처분이 내려진다. 신고자에게는 1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이에 따라 이들 자가용 화물차들이 택배시장을 이탈하면 택배기업들은 급증하는 택배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자칫 택배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또 다른 택배업계의 한 관계자는 "여전히 무허가로 남는 7,000여대의 자가용 화물차가 택배영업을 포기할 경우 쏟아져 나오는 택배물량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럴 경우 택배기사 근무환경만 나빠져 업무 자체를 포기해 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