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학습효과 없는 노사관계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은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크게 두 체제로 구분한다. 하나는 지난 87년 민주화 시기 이후의 10년간을 지칭하는 하는 것으로 ‘87년 체제’로 부른다. 이 시기의 노사관계는 민주화 물결을 타고 노사관계에 있어서 노조가 주도권을 행사한 시기였다. 노동운동=민주화=진보의 등식이 작용했다. 노동의 대폭발을 겪으면서 노사관계가 극도로 불안해지고 임금이 치솟았다. 이른바 고비용-저효율에서 비롯되는 한국병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기업들의 해외탈출이 봇물을 이루었다. 때이른 산업공동화 우려가 제기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랜 개발연대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후유증으로 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과도기적 증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치열한 대립으로 모두 패자 그러나 97년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새로운 분수령이 됐다. 이른바 ‘97년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부도라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의 정리를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노사관계에 관한 법적ㆍ제도적인 틀을 국제기준으로 바꾸는 노력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기세는 다소 꺾이는 듯했다. 과거 수세에 몰렸던 기업들도 경쟁력 차원에서 노사문제에 적극성을 보였다. 노동의 유연성이 강조되면서 연공서열에 보상체계와 평생직장이라는 오랜 관행이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규직의 높은 노동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노동형태가 급속히 증가한 결과 노동의 양극화라는 새로운 현상이 불거지게 됐다.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복지가 강조되고 사회안전망도 크게 확충되는 시기였다. 이렇게 보면 개발연대 이후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노사정 3자간의 치열한 공방의 역사인 셈이다. 파업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받을 정도로 격렬한 대립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해볼 만큼 해보고 상처도 입을 만큼 입었다. 노사는 한배를 탄 공동체라는 표현은 그저 공허한 수사일 뿐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경제위기론과 사회불안에 시달려왔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지금쯤이면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노사관계가 한단계 올라서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처럼 뼈아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이 없어 보인다. 학습효과가 없는 것이다. 대화는 실종된 가운데 갈수록 투쟁의 수위는 높아지고 불신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노사관계에 대한 국제 비교평가에서 만년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도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후진성은 여실히 입증된다. 선진국의 노조들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양보하고 참여하는 추세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동운동이 노사관계 본래의 장을 벗어났다는 점이다. 노조가 평택에서 미군철수를 주장하는가 하면 일반 기업체 근로자로 구성된 노조가 해외원정까지 불사하며 FTA, WTO 반대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조가 지나치게 이념적이며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포항 지역 전문건설 노조원들의 포스코 본사 불법 점거 농성과 그러한 불법 앞에서 맥을 못 추는 공권력은 법과 제도를 뛰어넘은 빗나간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노사관계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기업을 물리력으로 불법 점거하고 그러한 불법을 막으려는 공권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현실을 노사관계의 틀 안에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정부가 법질서·원칙부터 세워야 안팎에서 통제할 수 없는 온갖 악재가 터지면서 경제가 위태롭다. 잘못하면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노사관계부터 ‘상생의 2007년 체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자면 우선 노사정 각자의 학습효과가 필요하다. 오랜 기간 치열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혼란기에는 특히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경제의 입장에서 ‘중심(中心)과 중심(重心)’이 그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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