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는 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의 성적을 들고 들어온 홍 감독을 계속 신뢰하고 지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허정무 협회 부회장은 "홍 감독은 벨기에전(0대1 패)이 끝난 뒤 사의를 표명했지만 정몽규 협회장이 사퇴를 만류했다"며 "협회는 월드컵을 준비하기에 1년이라는 시간은 많이 부족했던 것을 인정하고 협회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감독 사퇴만이 능사가 아니라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릴) 아시안컵까지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감독도 이 같은 협회의 입장을 듣고 한국 축구를 위해 더 책임감을 갖고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협회가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고 최강희 감독이 '시한부' 사령탑을 지낸 뒤 지난해 6월 취임한 홍 감독. 월드컵에서 원칙을 깨는 선수 기용으로 '의리' 논란에 휩싸이고 전술이 실종된 수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이고도 그는 예정된 임기를 채우게 됐다. 벨기에전이 끝난 게 지난달 27일인데 협회는 사퇴 반려와 재신임을 불과 6일 만에 졸속 처리했다. 이에 대한 협회의 설명은 "언론이나 팬들이 홍 감독의 거취에 대해 궁금해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 결국 비난 여론을 조기에 수습하고자 한국 축구의 미래가 걸린 판단을 1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결정했다는 얘기다. 홍 감독은 지난 2일 정 회장과의 4시간 면담에서 뜻을 굽힌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의 논리는 당장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아시안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은 중장기 플랜을 세워야 한다면서 감독의 재신임 또는 경질의 판단 기준은 결국 눈앞에 다가온 아시아 대회였다. 2009년 20세 이하 월드컵 8강과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이끈 홍 감독은 지난해 협회가 내세울 수 있었던 최고의 카드이자 사실상 유일한 카드였다. 그 이후의 카드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상황. 홍명보 카드가 월드컵 출전 사상 16년 만에 최악의 성적으로 구겨졌음에도 재신임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협회에는 4년 뒤, 8년 뒤 월드컵을 바라보고 새 판을 짤 용기도, 인재 풀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