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국의 전문변호사] <8편> 노동 ⑤김성수 법무법인 지평지성 파트너변호사

'여성근로자 우선 구조조정'에 제동<br>직장내 성희롱 책임 추궁등 女근로자 권익향상에 큰 역할<br>의대→노무사→ 변호사 이색경력 "사회변화 맞게 법리개발 노력"


SetSectionName(); [한국의 전문변호사] 노동 ⑤김성수 법무법인 지평지성 파트너변호사 '여성근로자 우선 구조조정'에 제동직장내 성희롱 책임 추궁등 女근로자 권익향상에 큰 역할의대→노무사→ 변호사 이색경력 "사회변화 맞게 법리개발 노력" 진영태기자 nothingman@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김성수 파트너 변호사(48•사시 37회•사진)는 '의대생→노무사→변호사'로 변신을 거듭한 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실제 그는 의사ㆍ노무사ㆍ변호사 등 전문직 자격증을 3개나 갖고 있다. 그의 인생유전은 "82학번으로 시작한 대학생활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의사 꿈 접고 노동운동에 투신=촉망 받던 의사 지망생이었던 그는 대학 입학(82년)과 함께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남이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니지만 당시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의대생' 김 변호사도 침묵하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1985년 시국사건 집회에 참여했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돼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학교에서도 무기정학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노동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제적과 함께 인천 만석동의 한 유리공장에 취직해, 노조를 결성했다. 그러다 또 시련이 찾아 왔다. 1987년 5월 노동절 시위에 가담했다, 회사로부터 해고됐다. 김 변호사는 이때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대학 선배들이 만든 평화의원에서 산업재해상담 일을 돕다가 노동법에 심취했다. 틈틈이 노동법을 공부해 91년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했고, 95년에는 사법고시에도 합격해 변호사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김 변호사는 "학생운동을 계기로 노동현장에 뛰어들었고, 그런 경험들이 지금 노동자문이나 산업재해 상담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당시에는 힘들기만 했지만, 지금 보람이 돼 돌아오고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때마침 1998년 서울대가 시국사건으로 제적된 학생들에게 복학의 기회를 주자 원래의 꿈이었던 의대에 복학해 2000년 무사히 졸업했다. 김 변호사는 그 해 의사국시에도 합격, 의사면허를 취득하게 됐다. 결국 김 변호사는 남들이 하나도 갖기 힘든 전문자격증을 3개씩이나 갖게 된 특이한 사람이 됐다. 현재는 직접적으로 노무사 활동이나 의사로서 진료를 하진 않지만,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서 노무사 업무를 병행하고, 여러 병원에 의료법과 노동법 자문을 하는 등 세가지 직무영역을 넘나들며 다른 변호사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양질의 자문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성근로자 권익향상에 큰 역할"=김 변호사는 여성근로자의 권익향상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시 여성 근로자가 1순위 해고대상이 되는 불법적인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은 기념비적인 판례로 손꼽히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A보험사는 IMF 당시 경영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사내 부부사원 중 여사원 70여명을 가장 우선적으로 해고했다. 이후 해직자들은 "합리적 이유 없는 부당해고"라며 2001년 해고무효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이들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남편을 위한 개인판단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항소심에서 근로자를 대리한 김 변호사는 "형식적으로 사표를 제출했더라도 강제사직에 해당하며, 남편을 위한 개인 판단이었다기 보다 가족에게 미칠 수 있는 불이익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항변했다. 결국 항소심은 당시 근로자의 '현실적 상황'을 인정하며 "회사가 부부사원 중 여사원에게만 퇴직을 종용한 점이 추정된다"며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이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해고가 재량권을 일탈했다는 판단을 뒤집은 것도 김 변호사의 수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5년 B카드사는 직장 내에서 성희롱으로 무리를 일으킨 K씨에게 해고를 통보했지만, 서울고법은 K씨가 20여년간 회사발전에 성실히 기여하는 등 공헌을 한 점에 비춰볼 때 해고는 가혹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법원 이른 사건에서 사측을 대리한 김 변호사는 "K씨가 여직원들에게 과도한 스킨십을 하는 등 성희롱을 한 점은 명확하며, 특히 K씨의 지위는 사내에서 성희롱과 같은 부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지점장이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성희롱에 대한 책임을 추궁해 여성의 인권보호에 앞장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법원은 K씨에게 원고 패소 취지의 원심파기 판결을 내렸고, 이 판결은 대법원 취지대로 확정됐다. ◇"공익 위해 노동법 더 연구할 것"=그는 82년 대학입학과 함께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진 이후 지금까지 노동분야 이외에 한눈을 판 적이 없다. '의사면허까지 땄는데 아깝지 않느냐'며 의사를 권하는 주위의 '충고'도 있지만, 그는 노동법을 떠날 마음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노동법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인데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법이 지금보다 더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연구•발전시켜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급격한 경제성장에 비해 노동법 분야는 회사법이나 경제관련법에 비해 그 중요성에 비해 소외되었던 분야"라며 "사회•경제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맞게 법리개발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며 밝혔다. 그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경영상 해고'나 '정리해고' 부분에 관한 법리논쟁을 논문을 쓰고 싶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He is… ▲1963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82년 경기 수 원고 졸업 ▲1991년 제 3회 공인 노무사시험 합 격 ▲1995년 제 37회 사법시험 합격 ▲1996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졸업 ▲1998년사법연수 원 27기 수료 ▲2000년 서울대 의과대 졸업, 제 64회의사국시 합격 ▲2000년법무법인 지평변 호사 ▲2003년 서울아산병원 고문변호사 ▲ 2007년 현 대한의료법학회 이사 ▲2007년 미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법학석사 ▲2008년 현 법무법인 지평지성 파트너 변호사 ▲2009년 현 노동부 자문변호사 [한국의 분야별 전문변호사 만나보니…] 전체기사 보기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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