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마치 어제 일처럼 여겨질 것 같아요. 부디 세계 평화를 위한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3,000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9ㆍ11 테러 10년을 앞두고 5일(현지시간) 찾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만난 슈 월터(72)씨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플로리다에 사는 그녀는 살아서 꼭 한번은 이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아들과 함께 먼 길을 달려 왔다고 했다.
노동절 연휴를 맞아 그라운드 제로에는 평소 보다 훨씬 많은 인파로 붐볐다. 바로 건너편 임시 9ㆍ11 추모전시관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들은 하늘로 치솟고 있는 원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노점에서 파는 9ㆍ11 사진첩 등 기념품을 둘러보기도 했지만 표정은 밝지 못했다.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던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엔 재건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곳에는 6개의 빌딩이 들어서고 추모관, 추모공원도 세워진다. 6개 빌딩 가운데 가장 높은 104층짜리 1WTC는 현재 80층까지 올라갔다. 미국의 독립을 상징하는 1,776피트(541미터)로 지어질 이 빌딩은 내년말 완공예정이며 다른 빌딩들은 2015년까지 순차적으로 들어서게 된다.
쌍둥이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사우스 메모리얼 폴(South Memorial Pool)과 노스 메모리얼 풀(North Memorial Pool) 등 2개 연못이 조성된다. 물이 떨어지는 연못의 벽면에는 9.11테러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부착된다. 이 추모공원은 11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
테러가 남긴 외상은 이처럼 치유되고 있었다. 테러 이후 한동안 사람들이 가기를 꺼렸던 그라운드 제로 인근의 로어 맨해튼도 부흥기를 맞고 있다.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도 한해 900만명에 달한다. 10년전보다 거주 인구도 늘었고, 첨단 시설을 갖춘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기업들도 몰려오고 있다. 1WTC에도 출판기업 콩데 네스트 등 많은 기업들이 입주계획을 발표했다. 미 정부도 이 지역의 부활을 이끌어내기 위해 2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정신적인 상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소방대원으로 현장에 출동했다 순직한 아들의 시신을 3개월 후 찾아내 손수 수습했던 리 렐피씨는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10년이 지났는데, 어떠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10년 동안 아들을 보지 못했다고만 답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희생자 21명의 유가족들도 여전히 아픔속에서 살고 있다. 유가족중 일부는 상처를 잊기 위해 뉴욕을 떠났다. 남은 이들도 아픔을 되새기기 싫어 더 이상 노출되기를 꺼린다.
일반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3일 동부해안지역에 5.8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많은 뉴욕시민들은 테러의 기억을 떠올리며 "또 테러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뉴욕의 베스 이스라엘 병원에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제이콥 햄 박사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이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PTSD 반응을 보이면서 공황에 빠졌다"고 말했다. 수십층짜리 건물에서 근무하던 일부 시민들은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오는 경우까지 있었다.
9ㆍ11테러 10년이 지났지만 미국은 좀처럼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두 차례의 전쟁을 치뤘고, 지난 5월에는 9ㆍ11테러를 일으켰던 빈 라덴을 사살했지만 세계가 과연 더 안전해졌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은 활동을 계속하며 위협을 가하고 있다.
당장 FBI는 최근 9ㆍ11 10년을 맞아 소형 개인 항공기에 폭발물을 싣고 공격하는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 전역의 보안경계를 강화했다. 또 시사지인 뉴스위크는 최근 미국에 대한 테러음모 40건 이상이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경찰관 베누엔토씨는 "테러 10년을 앞두고 많은 행사가 열릴 예정이어서 경찰 근무인력이 크게 증원됐고, 앞으로 통제구간도 늘어날 것"이라며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