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저출산·고령화의 '덫'과 정부 카드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본격 나섰다. 올해부터 2010년까지 5년간을 기한으로 하는 제1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 시안을 확정, 발표한 것. 이 시안은 여론 수렴을 거쳐 이달중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최종 확정한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이를 테면 총력전을 선포한 것이다. 12개 정부 부처가 참여,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다 내놓았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저출산.고령사회를 향해 걷잡을 수 없는 가속 양상을 띠고있는 데 따른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현 추세를 방치할 경우 `늙은 한국'의 쇠퇴와 퇴락은 조만간 현실화 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대책에도 적잖은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의대세적 흐름을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란 시각도 팽배하다. 심지어는 정부내에서도회의론이 불거지고 있고, 정책 수단을 둘러싼 정부 부처간 불협화음도 빚어지고 있다. ◇ 저출산.고령화의 `덫' =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08명이었다. 1993년 1.67명이었던 것이 2000년 1.47명, 2002년 1.17명, 2003년 1.19명, 2004년 1.16명으로 매년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는 전세계 평균인 2.69명에 비해 절반도 못되는 수준이고, 선진국 평균인 1.56명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우리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저출산 비상이 걸린 일본도 1.29명으로우리보다는 사정이 한결 낫다. 이 같은 저출산에는 전통적인 가족.자녀관의 변화와 `반(反) 출산 환경'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2005년도 전국 결혼.출산 동향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혼 남성의 93.1%, 미혼 여성의 88.7%가 `자녀를 낳고 싶다'고 밝혔으나 절반 가까이가 자녀 양육.교육 부담을 이유로 한자녀만 갖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에 반해 평균 수명의 증가로 노인 인구는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를 상회하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우리의 경우 이미 2000년 고령화사회에 도달했으며 2018년 고령사회, 202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추산되나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내다보고 있다. 어쨌든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까지의 경과 기한이 26년 정도 걸리는 셈이다. 비교적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는 일본만 해도 그 기한이 36년이나 됐다. 독일은78년, 미국은 88년, 프랑스는 155년이나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의 고령화 속도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2050년에 노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7.3%로 일본(36.5%)을 제치고 세계 최고 수준이 된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55-63년생)가 노인 연령에 진입하고 초저출산 세대(2001년생 이후)가 가임 연령에 들어서는 2020년 이후 고령화는 급가속 양상을 띨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총 인구도 2020년의 4천996만명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게된다. 이 같은 저출산.고령화의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생산 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력 손상이 불가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고령화로 인한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감소분은 매년 0.25-0.75% 포인트 정도 된다. 이처럼 경제 성장 둔화가 불을 보듯 뻔한데다 노동력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경제 활력 저하, 성장 잠재력 손상도 피할 수 없다. 노인들과 젊은층 사이의 `세대간 전쟁'은 미래의 폭탄이다. 당장 2020년이 되면생산가능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고 2040년이 되면 2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한다. 노후 보장의 골간인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후(後) 세대의 과중한 부담과 장기 재정 불안으로 존립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 같은 고령화 경향에다 저출산 기조까지 겹치면 그 폭발력은 배가 된다. 일례로 과잉 투자된 학교와 교원의 구조조정, 장병 감소에 따른 국방력 약화 등이 당장현실적 사안으로 떠오른다. 외국인 노동자로의 노동력 대체, 아동 시장 축소에 반하는 실버산업 확대 등 그 파장이 미치지 않을 분야가 없다. ◇ 정부 대책의 허실 = 정부의 이번 시안은 외형상 매머드급이다. 전(全) 정부부처가 참여, 수개월간 공을 들였다. 정부는 일단 2010년까지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기반을 구축하고 이어 2020년까지 출산율 회복과 고령사회에 대한 성공적 대응을 목표로 잡고 있다. 향후 5년간의 추진과제는 크게 3가지다. 출산.양육에 유리한 환경조성, 고령사회 삶의 질 향상 기반 구축, 미래 성장동력 확보이다. 당장 구체적으로 추진할 정책 과제만도 70여가지가 된다. 정부는 이번 시안을 짜는 데 고심을 거듭했다. 지난해 9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다음달인 10월 복지부내에 저출산고령사회정책본부가 발족됐다. 이 본부에는 복지부와 노동부, 산자부, 기획예산처 등 12개 부처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기본계획을 마련했다. 각 부처의 파견 공무원들은 관계부처간 협의의 통로가 됐다. 연구 용역을 통해 18개 연구기관과 학계 전문가 60여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 처럼 이번 정부 시안은 방대하다. 그동안 민.관에서 논의돼 온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결산하는 성격도 갖는다. 하지만 회의론도 적지 않다. 특히 고령화 현상과 상관 관계를 갖는 저출산 기조에 대해선 정부 내에서도 내놓고 `반전 카드' 부재를 토로한다. 정부 관계자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은 한마디로 `돈'과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정책마다 상당 규모의 재원이 필요한데, 결국은 한정된 재원이 과감한 정책 드라이브에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실제 시안의 대부분이 각 부처에서 추진해 온 정책들을 취합한 수준에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신규 예산 사업이 극히 미약해, 기성품을 잔뜩 모아 놓은 `백화점식 진열장'이 돼버렸다. 더욱이 부처 이기주의도 표출된 것으로 관측된다. 각 부처는 저출산.고령화 정책들을 개별적으로 일찌감치 발표해 버리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김이 빠져 버렸다. 일각에선 `5.31 지방선거용'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번 정부 대책을 중심으로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과감히 추진하겠다는 정부 구상이 이 때문에 구심력을 상실한 감도 없지 않다. 당초 정부가 간판 정책으로 내걸려고 했던 아동수당제, 기본 보육료제 등이 빠진 것도 이번 시안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아동수당제는 여성부가, 기본 보육료제는 복지부가 각각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5년간 각각 3조원 가까운 재원이 드는 이들 대규모 사업을 둘러싼 부처간 갈등이 시안의 활력을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근본적 개혁 대신 개별정책을 통한 정부의 접근 방식에 회의적 시각이 팽배하다. 이를 테면 자녀 양육비.교육비 해소를 위한 교육 개혁 없는 미봉책으로는 저출산 기조를 반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저출산.고령사회에 진입하는 급격한 속도에 비해 정부 정책에 긴박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기 승부수를 띄우지 않을 경우 저출산.고령화의 후유증 치유가 불가능한 상황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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