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간담회에서 중소기업 사장 한 분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토로했다. “제가 사업을 한 지 30년째 됩니다만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IMF 때도 이보다 어렵지는 않았는데, 사업도 안되는데 임금은 왜 그리 높은지…. 이제 다 정리하고 중국으로 옮겨야겠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중소ㆍ영세기업의 `대탈출(Exodus)`로 인한 충격적인 산업공동화 현상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고임금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일부 대기업의 임금수준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기업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국내 A사의 근로자 평균연봉은 6,000만원으로 동종업인 일본 미쓰비시화학 근로자의 평균연봉과 같다. 비단 A사뿐 아니다. 이러한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3만1,300달러로 1만달러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3배에 달한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일본의 66% 정도에 불과하고 1인당 GDP는 3배 넘게 차이가 나는데도 임금수준이 같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우리 근로자들의 임금수준은 중국의 8~10배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노동집약산업뿐만 아니라 지식산업, 고부가가치산업까지도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우리 경제의 급속한 성장잠재력 훼손이 우려된다.
우리나라의 임금상승률을 한번 살펴보자. 해마다 생산성 증가율을 초과하는 고율의 임금인상으로 기업들은 골병이 들고 있다. 지난 98~2003년 우리나라의 임금은 60% 가량 상승했다. 동기간 미국과 영국은 15~20%, 타이완은 약 5% 상승했고 일본은 오히려 감소했다. 경기불황과 청년실업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지난해에도 우리나라의 임금은 10% 가까운 인상률을 기록했다. 더군다나 대기업 임금이 중소ㆍ영세기업 임금의 2배에 달해 근로자간에도 심각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청년실업의 심화, 산업공동화 현상, 국가경쟁력의 약화 등 문제들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는 없다. 이제는 임금안정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생산성 증가율을 초과하는 임금인상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수준의 혜택을 누렸던 대기업 근로자들은 조금씩 양보하고 그 혜택이 청년실업자, 중소ㆍ영세기업 근로자,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청년들에게는 일자리가, 영세기업ㆍ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는 정당한 땀의 대가가 돌아가도록 해 이들의 얼굴에 웃음을 돌려줘야 한다.
<김영배 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