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새출발 원하는 이들에게…

지난 97년, 잘나가는 잡지사의 편집장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까지 나는 그리도 길고 어두운 터널이 내 앞에 놓여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시작한 인터넷사업은 시기상조로 모인 사람 모두에게 물심으로 적지않은 상처만 남겼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세상에 대한 과소평가로 거의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나는 실직 상태에 머물러야 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력서를 내는 곳마다 좀더 낮은 수준의 급여와 지위를 원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갖가지 언론매체를 통해 알아낸 구인란에 이름 석자 써넣고 기다리는 일과 그동안 미뤄온 책 읽기였다. 그때 만난 책이 돈 슈나이더의 ‘절벽산책’이다. 돈 슈나이더는 어느 날 자신이 다니던 대학에서 해고 통보를 받으면서 기나긴 실직의 삶을 시작한다. 실직을 하기 전까지 그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앞으로만 나아가던 ‘잘나가던 영문학자’였다. 이 책은 그가 교수가 되고 실직한 후 다시 목수로서 새 삶을 살기까지의 내용을 이력서처럼 늘어놓으며 시작한다. 실직을 하고 그가 대학에 내놓은 이력서가 2년여 동안 무려 백 군데가 넘는다. 하지만 그 모든 곳에서 거절 통보를 받고 그때까지 자신이 누리던 삶이 얼마나 허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아이들의 실망, 아내의 묵묵한 지켜봄, 허무주의로 빠지는 인생, 그 과정에서 슈나이더는 자신만 바라보는 아내와 네 아이들 때문에 쉽게 인생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결국 청소부, 골프장 심부름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보지만 그마저도 얼마 하지 못하고 그만둔다. 영세민구제정책에 의지하는 빈민층으로 전락한 삶을 영위하며 슈나이더는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과 아내에 대한 사랑은 변한 자신의 삶을 인정하게 만들었고 우연한 기회에 공사장으로 일하러 가게 된다. 그는 기존의 가치관에 따른 사회적 성공만을 좇아가던 자신의 허상을 버리고 주어진 조건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당시 그의 걸음 하나하나가 마치 나의 삶과 같았다. 결국 나도 그처럼 눈높이를 낮춰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 그가 아직도 공사장에서 목수일을 하는지 다시 교수가 돼 잘나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수년간 외환위기로 인한 아픔의 긴 터널을 잘 지나왔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많은 사람들이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적지 않은 기업들도 몸 부풀리기보다는 끊임없이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긴축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음에 드는 직장에 취업을 못하는 젊은이가 너무너무 많다. 명문대 졸업장 하나로 편안하게 대기업에 취직할 것을 기대했던 젊은이들도 꽁꽁 얼어붙은 취업시장의 벽을 실감하고 자의 반 타의 반 실직자 신분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흔하다. 취직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대학원 진학이나 연수를 떠나 취업을 위한 시간 연장의 임시방편을 찾아보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을 탓하며 자포자기에 빠진다. 학창 시절 거창하게 세웠던 인생의 목표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지는 것을 보고 세상을 향한 분노의 언어를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었든간에 새로운 시작은 작은 변화에서부터 온다. 슈나이더의 말처럼 기존 가치관에 따른 사회적 성공만을 좇아가던 자신의 허상을 버리고 새로운 현실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 시작이다. 새로운 출발을 원하는 이들에게 작은 변화의 시작을 알려줄 ‘절벽산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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