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바지와 검정 선글라스, 질끈 동여맨 머리띠와 노란 번개 깃발.
`번개'(40)가 돌아왔다. 이번엔 훔친 이름 `조태훈'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 `김대중'으로.
중국집 배달원에서 일약 스타강사로 떠오르며 21세기 신지식인 반열까지 올랐으나 10년간 남의 이름으로 살아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곤두박질쳤다가 재기에 성공한 것.
부모가 차례로 재혼해 어릴 적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란 김씨가 자장면 배달을처음 시작한 것은 1986년 지방에서 고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였다.
명동과 을지로의 중국집에서 9년간 배달생활로 모은 2천800만원으로 사업에 손 댔지만 부도를 맞았다.
건설현장 막노동과 한식집 배달원을 거쳐 고려대 앞 중국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시 자장면과 인연을 맺었다.
마음가짐 뿐 아니라 모든 게 달라졌다.
중국음식 배달에서 가장 중요한 신속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장안의 명물이 됐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일에 대한 열정까지 인정받아 `배달철학'과 서비스 정신을 설파하는 명강사가 됐다.
자고 일어나보니 유명해졌다는 말을 실감했다. 신지식인에 선정됐을 땐 그야말로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2003년 7월 그동안 써온 `조태훈'이란 이름이 본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을 훔쳐 썼다는 사실이 경찰수사에서 드러났다.
향토예비군설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중지되고 거처를 자주 옮기면서 이전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주민등록이 말소되자 옛 직장동료의 주민증에 자기 사진을 붙여쓰다 적발된 것.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진실이 밝혀지니 오히려 홀가분했어요. 내 이름이 아니란 걸 먼저 밝혔어야 했는데 상황이 손댈 수 없이 커져서 스스로 바로잡기엔 이미 늦었더라구요." 이후 사람이 많은 곳엔 도무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목욕탕 가는 것도 꺼릴 정도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번개'의 인생역정과 서비스 철학을 담은 `오디오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인터넷에 눈을 뜬 김씨는 블로그를 만들고 글을 올리면서 온라인에서 다시 유명세를 되찾았고 이 과정에서 재기할 수 있다는 용기도 얻었다.
세상에 나오자 다시 강의 요청이 밀려들었다.
한동안 망설인 끝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이란 생각에 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강의를 재개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3∼4차례 전국 곳곳을 돌며 강단에선다.
이달 17일엔 서울 구의동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인적서비스전문인협회' 사무실을 열고 서비스 철학 전파도 본격화했다.
김씨는 "며칠 전 횡성 재래시장에서 상인들에게 강의를 했어요. 재래시장을 주로 찾는 이들이 서민인 만큼 이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왔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내 경험만을 토대로 사례 위주의 강의를 했지만 이젠 마케팅 같은 전문 분야를 제대로 공부해 살아 있으면서도 좀 더 체계적인 강의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